"새들이 남과 북을 잇는다." 바다 건너 북한의 곡창지대인 연백평야가 훤히 보이는 강화 서북부의 교동도. 세찬 바닷바람이 휘몰아치는 아침 무렵 무려 5,000여 마리의 기러기가 비상하며 비무장지대의 하늘을 빼곡히 수놓았다. 연백평야에서 밤을 난 기러기들이 서해상의 군사 분계선을 지나 남쪽 교동도로 넘어오기 시작했다.새들이 만든 평화의 섬
푸른 하늘을 새카맣게 뒤덮은 새떼들의 월경은 아침 공기보다 더 없이 싱그러운 풍경이었다. 이인식(李仁植) 습지보전연대 집행위원장은 "북쪽과 남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새떼들의 장관이 인간의 탐욕을 뛰어넘는 말없는 자연의 위대함이 아니겠느냐"며 무릎을 쳤다.
DMZ 생태기행의 마지막 종착역은 248㎞ 군사분계선의 서쪽 출발점인 강화군 교동도였다. 동서 10㎞, 남북 6㎞의 섬으로 북한 연백군을 마주하는 이 곳은 섬에 들어설 때부터 군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군사적 대치지역.
하지만 강화군 외포리에서 출입신고서를 작성한 후 배에 올라 섬에 들어섰을 때 분단의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섬의 넓은 논밭 곳곳에는 기러기와 오리류 철새들이 수십마리씩 떼를 지어 낙곡을 주어 먹으며 이리저리 날개짓을 해댔다. 햇살은 고요하게 섬을 빛냈다. 어느 섬마을과 다름없는 풍경이었다. 일행 중 한명이 "인간은 이 곳을 군사지대로 만들었지만, 자연은 이 곳을 생명과 평화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곧바로 남방한계선이 되는 섬 북쪽 무학리의 해안선 초소에 다다르자 예성강과 한강이 만나는 삼각주가 펼쳐졌다. 임진강과 만난 한강이 다시 예성강과 합류해 서해로 이어지는 천혜의 길목이었다. 바다와 강을 잇는 풍성한 물자의 집하장으로 교역의 혈맥이기도 했던 이 곳은 분단의 철책선이 들어서면서 뱃길이 끊긴 지 오래다.
대신 이 곳을 마음 놓고 지나다니는 것은 다름아닌 철새 무리였다. 청둥오리, 황오리, 큰기러기 등 오리와 기러기류 철새들로 가득 찬 이곳은 봄 가을이면 도요·물떼새 무리들을 손님으로 맞는다. 여름철 러시아, 알래스카 등지에서 번식을 마친 민물도요, 붉은어깨도요, 큰뒷부리도요, 흰물떼새, 왕눈물떼새 등이 9, 10월 이곳을 지나 동남아시아, 호주, 뉴질랜드 등지로 이동했다 다시 4, 5월에 북상한다. 황호섭(黃鎬燮)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팀장은 "남북의 뱃길은 끊겼지만 새들에게는 더욱 좋은 환경이 제공된 셈이다"고 말했다.
해안생태계의 보고, 강화갯벌
철새들이 이곳을 들르는 까닭은 곧 드러났다. 오후 무렵이 되자 강화 지역 생태계의 '안방마님'이 모습을 나타냈다. 물살이 빠지면서 해안선 가장자리로 갯벌이 점차 드러났다. 강화 남서부지역을 포괄하는 강화갯벌은 1억3,600만평에 이르는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다. 이인식 위원장은 "가무라기, 바지락, 백합 등 조개류와 농게, 칠게 등 갑각류 등 갯벌의 구멍 속에 온갖 생명체들이 숨쉬고 있다"며 "새들이 머나먼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도 이 곳에서 든든히 영양을 보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강화갯벌도 개발의 예봉을 피해가지는 못하고 있었다. 교동도 난정리 앞 해안은 둑을 쌓아 거대한 저수지로 뒤바뀌어 있었다. 굴곡 많았던 강화도의 남단 해안선도 80% 이상이 간척 사업으로 생긴 인공해안으로 변했다. 안창희(安昌熙) 경기북부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영종도 개발 등 해안선 개발로 인해 서해안 퇴적 지형이 바뀌면서 강화갯벌에 조개가 줄어드는 등 갯벌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 강화 갯벌의 서부 지역은 2000년에 저어새 번식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지만 남단 갯벌 지역은 제외된 상태다. 1990년대 들어 남단 갯벌지대를 자연생태계 보전지역, 습지보호구역 등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계속 있었지만 지역 사회의 반대로 번번히 무산됐다. 강화 북쪽은 그나마 DMZ로 묶여 방패막을 확보한 셈이지만 남단 지역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상황이다.
북쪽의 연백평야 지대와 교동도의 딱 중간쯤에 자그마한 돌섬인 '역섬'이 눈에 띄었다. 역섬은 세계적 희귀조인 저어새의 마지막 남은 번식지 중 하나다. 황호섭 팀장은 역섬을 가리키며 "저 섬이 야생동식물의 마지막 보루인 DMZ를 계속 보존해야 하는 이유를 말 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교동도=송용창기자hermeet@hk.co.kr
DMZ(비무장지대) 일원은 50여년 동안 인위적 간섭이 배제돼 자연상태를 유지함으로써 다른 곳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생태적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문헌과 필자가 조사한 결과를 종합해보면 비무장지대에서 891종, 민통선지역에서 1,866종이 관찰되어 생물종 다양성이 높은 곳이다. 강, 하천, 연못, 해안, 습지, 초지, 숲 등 서식처도 다양하다.
그러나 최근 남북화해 분위기에 따른 각종 개발계획이 수립되고 개발이익의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를 둘러싼 개발과 보존의 갈등이 대두되고 있다. 이슈가 되는 개발사업으로는 남북연결 철도와 도로 건설, 스토리사격장(경기 파주시 민통선 내 미군사격장)의 사용을 둘러싼 대토의 문제, 새로운 마을의 조성, 인삼밭이나 농지의 조성, 댐 건설, 생태관광시설 개발 등을 들 수 있다. 따라서 통일을 대비한 DMZ의 보전과 관리에 대한 종합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DMZ 생물서식처와 종에 대한 체계적, 종합적, 과학적 조사 및 지도화가 필요하다. 아직까지 제대로 된 DMZ 서식처 도면 조차 없기 때문이다. 특히, DMZ 습지의 조사, 유형화 및 지도화, 기능과 보전가치의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위와 같은 자료를 바탕으로, 하루빨리 DMZ 환경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지난 50년 동안 DMZ내의 많은 논과 밭은 생태적 가치가 있는 지역으로 변했다. 따라서 먼저 환경계획을 수립, 이에 맞추어 국토계획을 수립해야한다. 이 환경계획에는 생태계 위협요소의 파악 및 제거방안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셋째, DMZ의 사유재산권을 보장하고 보전에 따른 피해를 보상하기 위하여 피해(예상)토지의 매입, 생물다양성 관리계약의 체결, 또는 공공신탁의 설정 등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넷째, DMZ를 유네스코 접경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 관리할 필요가 있다. 향후 있을 남북회담의제로 이를 포함시키도록 해야 한다. DMZ의 남측과 북측은 생물지리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생태적 단위이기 때문이다. 철새는 남북을 오가고 있으나, 포유류는 그렇지 못하다.
다섯째, 위와 같은 사항들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가칭 'DMZ일원의 지속가능 관리법'(한시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DMZ와 민통지역을 총괄하는 법률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는 자연환경보전법에 의거, DMZ를 유보지역으로 지정하고 있을 뿐이다.
DMZ일원의 생태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업은 입지, 규모, 사업시기, 공법 등의 측면에서 신중히 고려되어야 한다. 모든 개발사업은 생태복원을 우선으로 고려하여 진행되어야 하며, 반드시 파트너십에 의한 모니터링을 실시하여 당초의 복원계획·설계의 추진상황을 평가하여야 한다. DMZ의 토지와 자원의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을 둘러싼 미래의 갈등해소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김귀곤 서울대 조경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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