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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4> 마약이 남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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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4> 마약이 남긴 것들

입력
2003.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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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세계란 게 있다면 그런 게 아닐까. 오색영롱한 천지에다 들리는 소리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당시 나는 마약이란 인간의 두뇌에 잠재돼 있는 능력을 극대화해 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음악을 통해 내가 체험한, 또는 겪은 세계를 펼쳐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그러나 마약이란 인간의 잠재력을 촉발시키는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그처럼 약의 힘을 빌리지 않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절감했다. 바로 옛 성인이나 거장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출옥 후 내가 노장사상 등 도의 세계에 몰입한 까닭이기도 하다.

마약의 경험은 당시 서구를 풍미하던 사이키델릭 뮤직의 세계로 한발짝 더 가까이 나를 데려갔다. 그것은 극히 주관적인 세계를 탐닉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이키델릭 뮤직이 쭉 늘어지는 디스토션 음을 특히 탐닉하는 것은 마약에 도취한 연주자의 귀에는 길게 이어지는 음 하나가 갖가지 테마로 살아 오기 때문이다.

환청 현상과 함께 나는 컵을 주전자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렇게 둔갑해 버리는 환시 현상도 경험했다.

극히 주관적인 세상이 너무도 당연시되는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사람의 동작은 동영상 만화의 연속 분할 동작처럼 한 컷 한 컷 딱딱 잘려 보인다.

그러나 절대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나는 마약의 세계를 찬미하는 게 아니다. 어리석었던 그 때를 회고하고 있을 뿐이다. 약 기운이 떨어지고 나면 또 그것만큼 괴로운 게 없다. 갑자기 천지는 잿빛으로 변하고 고통으로 온몸이 뒤틀려 온다. '업'(up)에서 급격한 '다운'(down)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마약 중독자가 되는 것은 잠시 맛 본 그 순간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금단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는 탓이다.

최근 청소년들이 테크노 뮤직에 맞춰 춤을 추면서 마약 효과를 내는 몇몇 약품을 함께 복용해 몰아의 경지에 빠져드는 모양인데, 너무나 위험한 불장난이라는 점을 거듭 밝히고자 한다.

언론매체에 이렇게 자세히 마약의 경험을 써보기는 처음이다. 그 시절 이야기를 길게 늘어 놓는 것은 당시 내가 국내 최초로 선보였던 사이키델릭 무대 실황이 곧 CD로 복각돼 뒤늦게나마 음반으로 첫 선을 보이기 때문이다. 모노에다 잡음이 너무 심한 마스터 테이프를 그 동안 버리기 아까워 1990년대에 DAT로 옮겨 두었던 것인데, 머잖아 햇빛을 보게 되는 것이다. '제퍼슨 에어플레인'과 함께 사이키델릭 록의 시대를 열었던 그룹 '아이언 버터플라이'의 유명한 '인-어-가다다비다'가 내 기타와 목소리로 담겨져 있다. 나의 과거가 다시 설 자리를 찾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구나 하는 감회에 젖는다.

오해가 있는 듯 한데, 내 앞 이의 치열이 엉망인 것은 마약 때문이 아니다. 어릴 적에 사탕을 입에 달고 다녀서 그렇다. 달리 말하면 누구나 먹고 싶어 애를 태웠던 사탕을 원없이 먹을 수 있을 만큼 어릴 적 우리 집은 잘 살았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각설이'의 이미지와 맞지 않아서 좀 헷갈리시는가?

자, 그러면 이쯤서 얼마나 잘 살았길래 단 것이 귀하던 그 시절, 이가 썩을 만큼 사탕을 먹을 수 있었는지, 어릴 적 이야기로 돌아가는 게 순서가 아닐까 싶다. 부침이 심했던 내 인생을 예고라도 한 것일까, 우리 집의 내력 역시 파란만장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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