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崔泰源) 회장의 SK(주)를 통한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한 비밀 대책 보고서가 발견되면서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만큼 최 회장 등 관련자들의 사법처리 가능성도 한층 높아졌다.17일 최 회장 사무실에 대한 검찰 압수수색에서 발견된 문건은 최 회장의 SK(주) 지배권 확보가 그룹차원의 치밀한 사전각본에 의해 진행됐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4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출자총액제한제는 회사 자산의 25% 이상 보유 주식에 대해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내용이다. 최 회장은 이때까지 지주회사인 SK C& C를 통해 모회사인 SK(주)를 간접 지배해 왔으나 출자총액이 제한될 경우 SK C& C의 의결권이 총주식의 2%대로 낮아져 지배권이 자동 상실될 위기에 놓여있었다. 지난해 초 그룹 구조조정본부가 주도해 작성한 비밀 대책 보고서는 이 같은 상황에 대비, SK C& C가 보유한 SK(주) 주식과 최 회장 소유의 워커힐호텔 주식 맞교환을 통해 최 회장이 SK(주)의 주식을 직접 확보하는 방안을 제시했고, 출자총액제한제 시행 5일전인 지난해 3월26일 전격적으로 단행됐다. 재계에서는 이를 '3·26 작전'으로 불렀다.
검찰은 이 문건을 최 회장이 부당 내부거래를 직접 지시했거나 적어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라고 보고 있다. 1년 이상 문건을 집무실에 보관해 온 이상 관련 사실을 몰랐을 리 없고, 따라서 향후 검찰 조사에서 "실무 차원에서 이뤄진 일로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뺌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김창근(金昌根) 구조조정본부장 등 주식 내부거래 방안 입안 및 실행 과정에 관련된 그룹 관계자들의 배임 혐의 입증도 한층 수월해졌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지금까지 소환된 SK그룹 관계자들 상당수가 이 같은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참여연대가 고발한 JP모건과의 이면계약 사건은 이미 금융감독원 조사를 통해 사실관계가 다 드러났고, 최 회장이 사재 380억여원을 털어 손실금을 보충하겠다고 한 만큼 수사의 핵심에서는 벗어나는 느낌이다.
한편 이번 수사가 SK그룹에 국한해 끝날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수사 관계자는 다른 재벌그룹으로의 수사확대 가능성에 대해 "전혀 검토한 바 없다"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부당 내부거래를 통한 편법 증여가 SK그룹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고, 차제에 사법 당국이 공정거래질서의 기준을 잡아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 수사의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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