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체 장애인의 어이없는 방화가 수많은 가족의 단란했던 행복을 한 순간에 앗아갔다.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매캐한 유독가스에 가슴을 쥐어 뜯으며 숨졌을 피해자들의 싸늘한 시신 앞에서 유가족들은 통곡의 밤을 새웠다.한 푼이라도 보태자며 학습지 교사로 맞벌이에 나선 주부 김인옥(30)씨는 18일 오전 6살과 4살짜리 두 아들을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지하철로 출근하면서 남편 이홍원(35)씨에게 휴대폰을 걸었다. "지금 지하철인데 거의 사무실에 도착했어. 저녁 밥 맛있게 준비해놓을 테니까 오늘 빨리 퇴근해." 그 때만 해도 남편 이씨는 행복한 저녁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행복의 순간도 잠시였다. 부인 김씨로부터 피맺힌 절규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 여보! 불이 났는데 문이 안 열려요. 숨을 못 쉬겠어요. 살려주세요, 살려줘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여보 사랑해요. 애들 보고싶어…"라는 김씨의 한 마디는 부부가 이 세상에서 나눈 마지막 대화가 되고 말았다. 남편 이씨는 "살려고 얼마나 발버둥을 쳤으면 부츠 한 쪽이 벗겨져 있었다"면서 "불행은 왜 열심히 사는 사람들만의 몫이냐"고 통곡했다.
이날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로 숨진 희생자 가운데 상당수는 전기 마저 나간 어둠 속에서 유독 가스에 시달리는 극한 상황에서 휴대폰에 의지해 필사의 구조요청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특히 희생자들은 주부와 자영업자, 방학을 맞은 대학생 등 평범한 소시민이 대부분이어서 유가족들의 슬픔을 더했다.
10살과 6살 된 두 딸을 둔 허은영(37·여·경북 김천시 신음동)씨는 남편 차한우(42·김천지청 직원)씨가 장남이라 "아들 하나를 낳아야 겠다"며 대구에 있는 산부인과를 찾아가다 변을 당했다. 친정 어머니 이모(59)씨는 "시부모와 친정 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 착한 며느리이자 훌륭한 딸이었는데…"라며 경북대 병원에 안치된 딸의 시신을 안고 통곡했다.
계명대 동산의료원에 후송됐다 숨진 김모(52·여)씨는 머리가 불에 약간 그을린 정도의 상처 밖에 없었지만 손톱이 다 빠져있어 유독가스와 불길을 뚫고 탈출하려던 처참했던 당시 상황을 짐작케 했다. 이날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안선희(20·여)씨의 아버지 안상선(55)씨는 오후 늦게서야 딸의 사망 사실을 확인하곤 한때 졸도했다. 안씨는 "며칠 전 취직을 해서 첫 출근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안씨는 "기관사가 출입문만 열어 줬어도 상당수는 살 수 있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날 병원과 현장 주변에선 밤새도록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안타까운 소식이 끊이지 않았다. 대구시청 총무과 직원 이달식(45)씨의 딸 현진(19)양은 서울대 사회과학대에 합격한 뒤 입학을 앞두고 친구들과 쇼핑을 하러 나갔다 소식이 끊겼다. 딸 미희(21)씨로부터 "아빠, 뜨거워 죽겠어요"라는 긴박한 휴대폰을 받은 정인호(51·대구 동구 방촌동)씨도 밤새 딸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해 발을 굴렀다. 박남희(44·여)씨는 피아노학원을 간다며 나간 고3 딸로부터 "엄마 살려줘"라는 휴대폰 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달려 나갔으나 소식이 두절된 상태다. 초등학교 6학년인 조효정(12)양은 친구와 만나기 위해 지하철을 탄 뒤 친구에게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지하철사고가 나 약속시간을 못 맞출 것 같다"고 전한 뒤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대구=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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