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주)에서 원유확보를 담당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17일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국제유가가 춤을 추는 바람에 매일 줄타기를 하고 있는 심정이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전쟁이 났으면 좋겠다"고 털어 놓았다.당초 1월말에서 2월초 사이로 예측됐던 이라크전의 개전이 국제 정치적 변수로 지연됨에 따라 국내 기업 및 정부 관계자들이 속을 태우고 있다. 긴장감 고조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불확실성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2년간 침체에 빠졌다가 올해 상승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였던 반도체 경기가 불확실한 상황 때문에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없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현대자동차의 한 관계자도 "국제 경제에 드리워진 안개 때문에 수출전략을 짜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전쟁 발발 시 30달러에 맞춰놓았던 유가 기준도 이미 올라서 다시 세워야 할 판"이라고 머리를 흔들었다.
불확실한 국제정세로 매일 출렁거리는 국제 유가동향에 당장 영향을 받는 정유사와 항공사의 관계자들은 한 목소리로 "이런 분위기가 계속 될 경우 올해 경영상황은 악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어차피 터질 전쟁이라면 차라리 빨리 시작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이라크전 발발을 염두에 두고 3단계 시나리오를 세워둔 국내 최대 정유사 SK(주)의 한 관계자는 "전쟁이 나지 않는 바람에 시나리오 자체가 흔들리고 있고, 오히려 당초 예상보다 유가만 올라 원가부담만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율도 비축기지(최대 85만 배럴 규모)의 비축분 확보에 나선 대한항공 한 관계자는 "긴장감 고조로 고유가가 지속되는 바람에 수급 선을 다변화하려고 백방으로 뛰고 있다"고 말했다.
이라크전을 앞두고 불확실한 경제 상황이 지속되면서 무역수지 적자에 이어 증시 불안, 소비 침체 등 경제 곳곳에 주름살이 깊어지자 경제 관련 부처들도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신국환 산자부 장관은 이날 "수출 성적이 좋았는데도 불구하고 유가가 급등해 3년 만에 처음으로 2월에 11억 달러 정도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할 것 같다"며 "빨리 위기 상황이 끝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나 정부가 바라는 최선의 시나리오는 어차피 일어날 전쟁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터져 단기간에 끝나는 상황. 그럴 경우 경제의 가장 큰 적인 불확실성이 제거되고 전쟁 위기가 불러온 유가 상승세도 한풀 꺾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1991년 걸프전이 터지자 오히려 유가가 폭락했듯이 불확실한 상황이 없어질 경우 유가도 제 자리를 찾아가고, 기업들의 경영환경, 국가경제도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천호기자 toto@hk.co.kr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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