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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물밑에서 / 물소리가 똑… 똑… 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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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물밑에서 / 물소리가 똑… 똑… 똑…

입력
2003.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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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파이어 앤드 아이스'란 시에서 선택할 수 있다면 세상이 불로 망하는 것보다 얼음 쪽이 낫다고 했다. 일본 공포영화의 '대표 선수' 나카다 히데오(42)감독이었다면 얼음을 물로 바꾸었을 것이다. '링'에서와 마찬가지로 감독에게 물은 모든 사건을 일으키는 최초의 범인이자, 영혼의 은신처이며, 화해의 메신저다.'링'의 원작자인 스즈키 코지와 감독 나카다 히데오가 만든 또 다른 공포 영화 '검은 물 밑에서'(Dark Water)는 낡은 아파트로 거처를 옮긴 모녀에게 다가오는 공포를 잔인하리만치 차분하고 음습하게 그려냈다.

딸 이쿠코(간 노리오)의 양육권을 두고 이혼한 남편과 소송 중인 요시미(구로키 히토미)는 초조하다. 정신과 치료 경력이 있는 데다 남편이 집요하기 때문. 요시미는 아이를 데리고 찜찜한 마음을 뒤로 하고 낡은 아파트의 305호로 이사한다. 405호의 배수관이 잘못된 것일까. 천장에서 물이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천장 반이 흥건히 젖고, 아이는 자꾸 누구 것인지 알 수 없는 빨간 가방을 들고 들어온다. 그 가방이 2년 전 405호에 살던 실종된 아이 가와이 미츠코의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후, 이쿠코는 유치원에서 정신을 잃거나 몽유병 증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요시미의 신경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것은 두 가지. 천장에서 떨어지거나 엘리베이터 바닥에 자꾸 고여 있는 물과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우월한 남편에게 아이를 빼앗기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영화는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물의 이미지를 다양하게 변주하며 공포의 수압을 서서히 올려간다. 억수로 퍼붓는 비, 아파트 위층에서 새는 물, 욕조에 넘치기 시작하는 물.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열리며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물은 물의 '폭력' 이미지를 덧씌우는 일종의 점층법적 묘사다. 성장한 이쿠코가 어머니의 영혼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도 비가 내린다. 물은 가해자이자 조종자이다.

모성애는 작가와 감독의 '해원(解怨)' 방식. '링'에서 해골을 안아주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일까. 자신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죽은 아이와 동거를 시작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링'보다 한 단계 더 끔찍하고, 슬픈 한풀이다.

가장 폐쇄적인 동시에 익숙한 공간인 엘리베이터에 귀신이 함께 타고 있다든가, 아파트 물탱크에서 아이의 육신이 썩어가고 있고, 어머니로부터 자주 '잊혀지는' 아이가 귀신에 홀리기 쉽다는 설정이 공포를 일상으로 연장시킨다. 잊혀질 만하면 공포가 되살아 나는 영화. 21일 개봉. 12세 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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