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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다시 보는 히로시마의 교훈

입력
2003.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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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폭탄의 위력은 어느 정도일까. 얼마나 무서운 무기이기에 자고 나면 온통 그 얘기 뿐인가. 이런 의문에 간단히 답해줄 자료가 여기 있다."히로시마(廣島)는 폭격 당한 도시로 보이지 않는다. 마치 거대한 증기 롤러가 깔아뭉개고 지나가 도시를 완전히 없애버린 것 같다. 이 사실이 세계적인 경고가 되기를 희망하면서 기사를 쓰고 있는 내 눈에, 미군의 융단폭격을 당한 태평양의 섬들은 마치 에덴의 낙원 같다…. 히로시마에 도착해 사방을 둘러보니 25∼30 평방 마일 이내에 건물 한 채도 보이지 않는다."

군국 일본을 굴복시킨 히로시마 원자폭탄 피폭현장을 최초로 보도한 1945년 9월 4일 영국 신문 <데일리 익스프레스> 의 기사는 철저히 파괴된 히로시마의 겉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호주 출신 월프레드 버체트 기자(1911∼1983)가 쓴 첫 현지르포 기사 제목은 '세계에 보내는 경고'이지만, 엄정한 객관성을 의식한 때문인지, 묘사는 너무 드라이하다.

참사의 순간에 대한 묘사도 메마르기는 마찬가지다. "사망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폭탄에서 발생한 무서운 열에 타버려 남녀노소를 구별할 수조차 없었다. 폭발의 중심부에 좀 더 가까이 있었던 수 천명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그대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히로시마 사람들 얘기로는 원자열이 너무 높아 사람들이 순식간에 재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부상자들이 신음하는 병원 르포기사는 너무 처절하다. "폭탄이 터졌을 때는 아무 상처도 입지 않았던 사람들이 괴상한 후유증으로 죽어가는 것을 나는 병원에서 많이 보았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들의 건강은 악화했다. 식욕이 없어지고, 머리카락이 빠져나가고, 몸에는 푸른 반점이 생겼다. 그 다음에는 귀와 코와 입에서 출혈이 시작됐다. 그러다가 주사 맞은 자국부터 살이 썩어가다가 예외 없이 죽는 것이었다."

이 날 아침 히로시마에 공습경보가 울렸지만 나타난 것은 폭격기가 아니었다. 비행기 두 대가 사라지고 나서 사람들이 출근을 서두르고 있는데, 한 대가 되돌아오더니 낙하산 같은 것을 떨어뜨렸다. 번개처럼 빛이 번쩍 하는 순간 사람들은 뜨거운 열 폭풍에 나뒹굴었다.

하늘에는 거대한 연기구름이 피어 오르고, 그 중심부에 진홍 빛 선이 생겨나더니, 구름 전체가 빨갛게 변했다. 공원의 소나무 숲까지 불덩어리가 된 연옥 속에서 열기를 견디지 못한 시민들이 강물에 뛰어들어 죽어갔다. 35만 시민의 3분의 1이 죽었고, 실종자 파악은 불가능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금도 치명적인 후유증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사상자 가운데는 한국인도 많다.

히로시마 원폭은 지금 미국이나 러시아가 갖고있는 것에 비하면 장난감 수준이다. 북한이 현재 핵무기를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설혹 가졌다 하더라도 히로시마에 사용된 '리틀 보이' 수준이거나, 약간 향상된 정도일 것이라고 북한 관측자들은 보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을 믿고 미국에 대드는 것은 그야말로 범 앞에 까부는 하루 강아지 꼴 아닌가. 지금 평양에서도 아침 저녁 공습 사이렌이 울리고, 대피훈련과 등화관제 훈련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지난 7일 BBC 방송은 '신성한 전투'에 떨쳐 나서자는 선동 포스터가 평양거리 여기저기 나붙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핵전쟁이 될 것이고, 그 피해는 남과 북을 가리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핵무기의 그 가공할 파괴성 앞에서 어떻게 한반도 핵전쟁을 입에 담을 수 있는가.

강대국이 가진 핵이 대포라면 북한이 가지려는 핵은 딱총 수준이다. 주먹에는 주먹, 칼에는 칼로 맞서는 것이 싸움의 속성이다. 부시의 미국은 까불면 정말 갈겨버릴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북한은 꼭 알아야 한다.

/문 창 재 논설위원실장 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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