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검은 아직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경남 창원시 귀곡동 두산중공업 중앙광장. 지난달 9일 유서를 남기고 분신한 배달호(裵達鎬·50)씨의 시신은 사건 현장에서 고작 2m 떨어진 검은 장막의 냉동차 안에 안치돼 있었다. 그리고 회사 곳곳에 내걸린 그의 영정. 그는 처연한 눈빛으로 외로운 농성 천막을, 작업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죽은 자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노조와 죽은 자를 이용하지 말라는 회사의 끝 모를 싸움을 응시하고 있었다.
울분·한숨의 노사 지리한 싸움만
13일 두산중공업은, 사측의 설명처럼, '정상조업' 중이었다. 이 날은 노조가 회사측이 작성한 노조 파괴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조합원에게 설명하기 위해 4시간 부분파업을 선포한 날. 하지만 3,500여명의 조합원 중 터빈공장 3층 식당에 모인 조합원은 130여명에 불과했다.
분신사망대책위와 노조 집행부 사이에서 안타까운 한숨이 터져 나왔다. "사측에서 조합원들의 참가를 방해하고 있다. 관련 제보도 접수됐다"고 했다. 한 노조원은 "회사가 한치의 양보도 없이 밀어붙여 속에선 울분이 터진다"면서도 "'파업 나갈 거냐'고 은근히 물어오는데 누가 선뜻 여기 나올 수 있겠느냐"며 분개했다.
같은 시각 배씨가 근무했던 중앙광장 부근 보일러공장. 쇳가루 냄새와 날카로운 용접 소음에 갇힌 1만평 규모의 작업장 인부 역시 30여 명이 전부였다. "부분파업인데도 정상조업을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보일러 판넬을 용접하던 직원이 대뜸 쏘아붙였다. "이기 정상조업으로 보이요. 자꾸 말 시키지 마소." 한 켠에 섰던 다른 직원이 "동료가 죽어 나앉았고, 노조서는 파업한다 카는데 일하는 맘이 어떻것소?"라며 "여기가 평상시엔 200여 명이 일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관리자의 눈치를 보던 한 직원은 지나가듯 "무노동 무임금 그거 때매 마음은 있어도 몸이 안 따르는 기다"라고 했다.
회사 분위기는 사측 설명처럼 '정상 조업'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노조가 주장하는 '뜨거운 투쟁 열기'도 찾기 어려웠다.
분신 배씨의 유서
숨진 배달호씨가 노동 운동가였다는 사실은 모두 인정한다. "달호 형님은 집회 때마다 앞장서 호루라기를 불며 노조원을 독려했다"는 한 노조원의 진술과 대책위가 폭로한 노무관리수첩에 '배달호씨는 (대의원대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라'는 메모가 이를 입증한다.
21년간 두산중공업에 다닌 배씨는 지난해 47일 동안의 파업 때 노조측 교섭대표로 참가했다가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파업이 끝난 후 자진 출두한 그는 이후 2개월의 옥살이, 3개월의 정직에다 회사로부터 월급의 50% 가압류 처분까지 받고 지난해 12월18일 자신이 일하던 보일러 공장으로 돌아왔다. 그는 6개월 만에 받는 월급 수령일을 하루 앞두고 숨졌다.
'출근을 해도 재미가 없다. 해고자 모습을 볼 때 가슴이 뭉클해지고…'로 시작하는 편지지 1장 반 분량인 배씨의 유서에는 절박한 심정이 녹아 있다.
대책위는 "회사측의 가혹한 가압류와 노조원 대량 해고 조치 등 백화점식 노동탄압이 빚은 참극"이라며 "유서 내용처럼 해고자 복직, 가압류 철회, 파업기간 중 조합원에게 내린 무단결근 조치 철회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맞춤법이 틀린 데 없이 정확하다, 가족 이야기가 너무 없다" 등 유서의 진위 여부를 의심하던 사측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자필 판정이 내려진 뒤부터는 배씨 죽음의 동기를 수긍하고 있다. 하지만 사측은 "개인적인 문제를 전체 직원의 의사와 동일시할 수 없다"며 "가압류 해제는 지난해 말부터 노사간 협의가 진행 중이니 우선 장례부터 치르자"고 맞서고 있다.
창원시민들도 엇갈린 반응
더구나 사측은 이번 사태를 노동계 전체로 확산시키려는 움직임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집회를 해도 모이는 인원은 고작 300명 남짓이고 나머지는 다 외부인이에요. 두산은 엄연히 민간기업입니다. 공기업 때의 무사안일을 뿌리 뽑아야죠."
이 와중에 유족들까지 갈라서는 사태가 겹쳐 노사간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남편의 장례절차를 노조에 위임하고 회사 터빈공장 해고자방에 묶고 있는 배씨의 부인 황길영(42)씨는 얼마 전 시어머니와 시동생 명의로 된 장례절차 진행권 가처분 신청서를 받고 기겁했다. "남편을 잃은 슬픔도 감당키 힘든데 식구들까지 등을 돌리는 것 같아 가슴이 메입디다." 17일 시어머니 등이 소를 취하하면서 유족간 소송문제는 다행히 일단락됐지만 노조측과 회사측은 각각 "(회사가) 유족들을 회유하고 이간질 하고 있다", "(노조가) 배씨 부인을 감금하고 있다" 식의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갈수록 꼬여가는 두산 사태를 바라보는 창원 시민들의 반응도 갈리고 있었다. 한 택시기사는 "물 장사만 하다가 대뜸 세계에서 몇 위 안에 드는 기업을 먹었으니 얼매나 의욕이 앞섰겄소. 초장부터 너무 심하게 한기 지금 탈 나는기라"고 말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한 중년여성은 "그 사람들 연봉이 한국중공업 시절에도 다른 회사 곱절은 됐을 끼요. 죽은 사람만 아깝지, 뭐." 늦은 저녁을 들고 있던, 그 역시 숨진 배씨와 별 달라 보이지 않던, 한 시민이 넋두리처럼 읊었다. "'노사자율' 듣기사 꽃노래지만, 그래 갖고는 택도 없다. 누가 말리 조야지." "정치하고 행정하는 것들은 저그 골치 아푸모 자율해라 안쿠나." 마주 앉은 이의 대답에 식당 안은 쓴 웃음이 번졌다.
/창원=글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사진 이성덕기자
배달호씨 분신 사망 사건의 노사 쟁점은 그가 남긴 유서에서 비롯됐다.
두산중공업은 원래 한국중공업이었다. 2001년 3월 두산중공업으로 바뀐 이후 민영화의 길을 걸어왔다. 유서에는 회사의 민영화가 진행되던 지난해 47일간의 파업에서 참패한 노동조합의 요구 사항이 꼼꼼히 적혀 있다. 해고자 18명의 복직과 가압류 해제, 노동조합 말살 중단 등이다. 이 때문에 노조는 해고자 복직 문제와 가압류 해제, 파업 참가자에 대한 무단결근 처리 등을 일괄 타결하자는 입장이다. 장례문제는 '불쌍한 해고자들 꼭 복직 바란다. 나는 항상 우리 민주광장에서 지켜볼 것이다'는 유서 내용을 들어 차후에 논의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회사는 "가압류 해제 문제는 이미 지난해부터 협의가 이뤄지고 있어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지만 해고자 복직문제는 지난해 말 노사합의로 철회된 사항"이라며 "장례부터 치른 뒤 나머지 부분을 협상하자"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법과 원칙'을 앞세워 민영화를 추진하던 회사측은 이번 사건이 노사 관계에 나쁜 선례를 남길까 우려하고 있다.
노사는 지금까지 7차례의 협상을 했지만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노조는 회사를 압박하기 위해 회사의 부당한 노무관리 지침 등이 담긴 블랙리스트를 폭로하고, 회사는 관련 조합원을 고소하는 등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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