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이 16일 기자회견을 통해 5억달러 대북송금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현대상선이 송금한 2억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3억달러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 이 부분이 대북송금 의혹의 핵으로 등장하고 있다. 정부 역시 14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담화를 발표하면서 3억 달러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현대의 한 관계자는 정 회장의 함구에 대해 "공개할 경우 현대 내부 뿐 아니라 대북경협 등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내용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즉 현대 안팎으로 복잡한 사정이 맞물려 있어 스스로 공개하느니 보다 침묵으로 일관하고, 정치적으로 해결되길 기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 현대의 말 못할 사정은 무엇일까. 우선 내부 사정으로는 현대가 산업은행 대출금 2억 달러 외에 문제의 3억 달러의 조달 과정이 밝혀지는 것을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까지 현대건설과 현대전자에서 각각 1억5,000만 달러와 1억 달러를 조달, 북에 송금했다는 정황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주장이 사실일 경우 현대는 심각한 유동성위기를 겪고 있던 현대건설에서 운영자금 명목으로 빌린 돈을 대북송금에 사용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계열사간의 복잡한 거래를 통한 분식회계와 공시위반 사항 등이 추가로 드러나면 법적처벌도 감수해야 한다. 더욱이 당시 반도체 활황으로 상황이 괜찮았던 현대전자에서 이사회의 승인 없이 돈이 빠져 나갔다면, 소액주주들의 경영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다.
외부 사정도 나을게 없다. 그 동안 기업들이 음성적으로 행해 온 것으로 알려진 해외페이퍼컴퍼니 등을 통한 '돈세탁 과정'이 공개될 경우 현대는 외환거래법 위반 등 법적 제재를 받게 된다.
게다가 공식적인 대북 송금과정을 벗어난 비밀 대북송금 루트까지 공개된다면 '남북교류법' 등 각종 실정법 위반사실이 밝혀지고, 자칫 '대북 경협사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일각에서는 대북 송금액 5억 달러 중 상당한 액수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개인구좌로 보내졌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를 공개할 경우 현대의 대북 경협사업 뿐 아니라 남북관계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다는 뜻이다. 정 회장이 "비공개를 전제로 검찰이나 특검에서 (3억 달러 등에 대해) 밝힐 수 있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가 '대북송금 퍼즐'을 어떻게 풀어갈 지 주목된다.
/권혁범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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