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역사학자들이 21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일제의 조선인 강제연행의 불법성'을 주제로 학술 토론회를 갖는다. 관련 자료 전시도 함께 하는 이번 토론회는 남북 학자 교류라는 학술적 의의뿐 아니라 미묘한 주변 정세 하에서 한반도 화해 기류 조성에 일조한다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다. 이번 행사는 2001년 3월 '일제의 조선 강점 불법성'을 주제로 한 1차 전시·토론회에 이은 두 번째로 남북 학자들이 우리 땅에서 정례로 여는 분단 이후 최초의 학술토론회로 자리잡았다. 국내 신문사로는 한국일보가 단독으로 주최하는 이번 전시·토론회의 추진 위원장인 강만길 총장을 만나 행사 의의에 대해 들어 보았다.―이번 전시회와 학술 토론회 개최를 앞둔 감회는.
"네 번째 평양 방문이다. 6·15 남북 공동선언 때 남쪽 대표단으로 간 게 처음이고, 그 뒤 제1차 남북 역사학자 공동 학술토론회 준비와 토론회 참석을 위해 평양에 갔다. 방문할 때마다 북한 사람의 생활이나 표정이 많이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 2년 전 방문 때는 새벽 5시쯤 평양 보통강변을 혼자 돌아다닌 적도 있다. 출근길에 거리서 만난 평양 시민들에게 서울에서 왔다고 인사하면 다정하게 대해주더라. 이런 토론회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져 남북 교류의 폭을 넓히는 데 일조하기를 기대한다."
―이번 학술 토론회의 의의는.
"이번 강제 연행 관련 전시·토론은 지난번에 이어 일제의 만행으로 조선인들이 얼마나 큰 고초를 겪었고 얼마나 희생됐는지를 살펴보자는 취지다. 진전의 기회를 마련했다가 다시 뒷걸음치고 있는 북일 관계 개선을 위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일제의 '강제 연행 문제'를 주제로 정한 까닭은.
"1965년 한일 협정 때 그 문제가 제대로 거론 안돼 배상 조약이 아니라 청구권 조약이 되고 말았다. 앞으로 북한이 일본과 맺을 유사한 조약은 배상 조약이 돼야 하고 남북 통일 이후 조약을 일원화할 때도 그래야 한다. 일본은 여전히 한일합방을 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한일 협정에는 35년 동안 일본이 조선을 강제 지배했다는 내용이 들어있지도 않다. 배상 조약을 체결하지 않으려고 역사를 속이고 있다. 강제 연행 문제 등을 통해 한일 관계를 명백히 밝히는 것은 우리 민족 모두의 문제이다."
―자료 준비는 어떻게 했나.
"일제 강제 연행 관련 사진 자료나 문서, 연구 성과물 등은 자료 전시회를 위해 미리 북한에 전달했다. 사진 자료는 당시 징병이나 징용의 현장을 담은 사진 위주로 독립기념관 소장 자료를 상당량 복사했다. 문서는 일제의 관청 문서는 물론 해방 이후 이 분야 연구 논문을 포괄한다.
―북한의 일제시대 연구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북한의 일제 시기 연구 성과는 상당하다. 북쪽 시각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민족해방운동사 정리가 충실하고, 사회경제사나 문화사 연구도 이에 못지않다. 남한의 경우 일제 시대사 연구 인구가 북한보다 많다고 할 수 있지만 대개 개인적 관심에 따른 연구여서 독립운동사 분야에 치우쳐 있다. 반면 북한은 학문 연구도 체계적으로 이뤄져 성과가 각 방면에 고르다."
―앞으로 토론회나 남북 학자 교류 계획은.
"할 수 있다면 토론회를 계속 이어가고 싶다. 이런 토론회가 계속되면 남북이 역사를 보는 견해 차이를 좁혀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일제 문제가 초점이지만 앞으로 한국 고대사나 고고학 분야를 주제로 폭을 넓혀갔으면 한다. 그리고 개막 인사말에도 넣었지만 완전한 남북 통일 이전에라도 남북 역사학자들이 공통의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 가르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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