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테러 자체보다도 더 고통스런 테러의 공포가 미국인들의 일상을 파고들고 있다. 7일 테러 경계 수위가 높은 위험을 나타내는 '코드 오렌지'로 격상된 후 워싱턴 인근에서 비상시 생필품을 찾아 대형 마켓을 찾는 시민들의 모습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손수레 가득 생수와 비상식량을 채운 쇼핑객들의 얼굴에는 순간의 안도감이 흐른다.학교에서 화생방 테러 대비 요령을 배운 아이들은 부모의 등을 떠밀어 문틀과 창문 틈새를 메울 접착용 테이프를 사도록 조른다. 테이프가 생화학 가스 차단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결국은 산소 부족을 느끼지 않을까…. 부모는 반신반의하면서도 빈 라덴의 육성 녹음을 떠올리며 매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공포감의 빠른 전이에 당황하는 쪽은 정부 관리들이다. 8일 전 테이프 밀봉 효과를 예시하며 테러에 대한 주의를 촉구했던 톰 리지 국토안보장관은 "방심도 금물이지만 그렇다고 일반 가정에서 창문을 봉할 필요는 없다"고 목소리를 낮췄다.
당초 테러 발생의 정점으로 예상됐던 주말이 지나면서 불안감을 불러 일으키는 데 큰 몫을 했던 언론들도 재빠르게 정보의 신뢰성과 정부의 '숨은 의도'를 분석하는 기사를 내놓기 시작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16일 테러 정보의 제보자가 거짓말 탐지기를 통과하지 못한 점 등을 들어 이번 테러 경계 발동이 불안전한 정보에 근거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뉴스위크는 "잘못된 정보 못지않게'뭔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하는 일부 관리들 때문에 위기가 눈덩이처럼 커졌다"고 지적했다. 이번 소동의 이면에서 이라크 전쟁을 위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려는 불순한 의도를 의심하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9·11 이후 미국인들은 공포와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 불확실한 테러 경계 발동의 진상을 묻어 둔 채 그들은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을 뿐이다.
김승일 워싱턴 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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