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는 모두 신데렐라 이야기다. "백마를 탄 왕자가 나타나 여주인공을 말에 태우고 떠나 둘이 함께 행복하게 살았노라"는 식으로 끝난다.최근에 나온 몇 편의 로맨틱 코미디들도 전부 이런 사탕발림식의 해피 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지난 7일 개봉된 '10일만에 남자 버리기'(사진)는 이런 비현실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견본 같은 영화. 남자를 유혹한 뒤 10일 만에 자기를 떠나게 만든 사연을 칼럼으로 쓰기로 한 잡지사 여기자(케이트 허드슨)와 어떤 여자든 자기를 10일 만에 사랑하게 만들겠다고 내기를 건 광고회사 직원(매튜 매커너히)의 사랑놀음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혹평에도 흥행 1위를 했다.
이에 못지않게 터무니없는 내용의 영화는 지난해 말 나온 '맨해튼의 하녀'. 제니퍼 로페즈가 뉴욕 고급 호텔의 하녀로 나와 부유한 미남 정치가(랠프 파인스)의 가슴을 차지해 둘이 결혼해 잘 살았다는 진짜 신데렐라 이야기. 또 다른 비상식적인 로맨틱 코미디가 역시 뉴욕이 무대인 '투 윅스 노티스'. 환경보호론자인 여변호사(산드라 불럭)와 그녀가 증오하던 피도 눈물도 없는 개발업자(휴 그랜트)가 우여곡절 끝에 사랑으로 맺어진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이다.
7일 개봉한 흑인들의 로맨틱 코미디 '이바로부터 우릴 구하소서'에서는 주인공 남자가 자기를 버린 연인의 마음을 돌린다고 대낮에 백마를 타고 도심에 나타난다. 미국 사람들이 비극을 싫어해 이런 천편일률적인 로맨틱 코미디가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이바로부터…'를 제외하고 장사도 잘됐다. 스타파워와 로맨스에 대해 막연히 갖고 있는 신화적 관념 때문인 것 같다.
요즘 영화들에 비하면 옛날 로맨틱 코미디는 지적이요, 세련됐고, 위트가 넘쳤다. 배우들은 광채가 났고, 대사는 신랄하고, 깨소금맛이 났다. 이 장르를 멋지게 주름 잡았던 배우는 케리 그랜트. 그가 주연한 스크루볼 코미디 '엄청난 진실'(1937), '베이비 키우기'(1939), '그의 여비서'(1940) 및 로맨틱 코미디 '필라델피아 스토리'(1940)와 '잊지못할 사랑'(1957) 등은 모두 주옥 같은 작품이다. '터프 레이디' 바브러 스탠윅은 로맨틱 코미디에도 강했다. 그녀가 사기꾼으로 나와 어수룩한 백만장자 헨리 폰다를 녹여놓는 '레이디 이브'(1941)와 아이처럼 순진한 언어학자 게리 쿠퍼의 가슴을 정복하는 쇼단 댄서로 나온 '정열 덩어리'(1941)는 몇 번을 봐도 재미있다.
그에 비하면 요즘 로맨틱 코미디들은 겉만 번드르르 하고 비현실적이며 진부하다. 그 누구도 이제는 옛날식 우아한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지 않는다.
/한국일보 미주본사 편집위원 hj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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