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74). 27년 째 정신병원에서 치료 받으며 작업하고 있는 일본의 세계적 현대미술 작가. 그를 보면 예술은 광기(狂氣)와 통한다는 게 실감난다. 아트선재센터에서 5월21일까지 열리는 자신의 대규모 전시회 개막식 참석차 14일 방한한 그를 만났다. 야요이 미술의 트레이드 마크인 물방울 무늬를 응용한 빨간 원피스와 모자, 장난감 같은 선글래스에 왼손에 손바닥만한 빨간 반지를 낀 작가는 한국 미술계 인사들의 질문과 플래시 세례에 두 눈을 부릅뜬 특유의 표정으로 답했다.이번 전시는 야요이의 근작 대형 환경미술 작품 10점으로 구성됐다. 2000년 말부터 프랑스와 덴마크, 오스트리아를 거쳐 한국까지 국제 순회전으로 열리고 있다.
'환경미술'은 요즘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환경 문제가 아니라, 관람자의 감각을 동원한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한 1960년대 이후의 현대미술의 한 조류를 일컫는다. 야요이는 그 환경미술의 선구자다.
그는 "31살 때 겪었던 경험으로 환경미술에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테이블, 의자 등 이곳 저곳에 미러 볼(mirror ball)이 투영되면서 무늬를 만들어내는 광경을 보았다. 심장 박동이 격해져서 병원에 실려갔다. 그때 받은 영감으로 환경 설치미술을 시작하게 됐다." 미러 볼은 거울처럼 대상이 비쳐보이는 은빛 공을 말한다.
이번 전시회에도 미러 볼을 이용한 '나르시스 정원'이란 작품이 나온다. 관객은 전시장 바닥의 수많은 공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것을 보며 그 공을 만지거나 사이를 걸어 다닌다. 야요이는 1966년 초청 받지도 않은 베니스 비엔날레에 가서 운하에 1,500개의 공을 띄우고 비엔날레 주최측이 저지할 때까지 그것을 2달러씩 받고 사람들에게 팔았다.
미러 볼과 함께 '환영'과 '강박'이라는 야요이 미술의 정신병적 기원을 보여주는 것은 물방울 무늬(polka dots)다. 아트선재센터 전시장에 들어서 '보이지 않는 인생'이라 이름한 수백 개의 볼록거울로 뒤덮인 미로 모양의 설치작품을 지나면 '뉴 센트리'를 만나게 된다. 천장과 바닥이 각각 다른 크기와 색상의 물방울 무늬로 뒤덮인 방에 역시 물방울 무늬가 그려진 대형 풍선들이 떠다니며 환상적 공간을 연출한다. 야요이가 끊임없이 물방울 무늬, 혹은 미세한 그물 같은 형상을 그리는 것은 그 자체가 강박증이자, 스스로의 환각 증세를 치유하고자 하는 심리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물방울을 거쳐 '러브 포에버'와 '나는 여기에 있지만 아무 것도 아니다', 그리고 '물 위의 반딧불'을 보면 야요이는 이 작품들을 통해 자신의 환각을 관객에게 미적 환상으로 되돌려주고 있음을 알게 된다. 거울과 조명을 이용해 무한(無限)의 개념을 눈 앞에 현실화해 보여주는 듯한 몽환적 작품들이다.
어릴 적부터 강박 증세를 보인 야요이는 1960년대 미국으로 가 도널드 저드 등 작가들과 교유하며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나체 해프닝을 벌이는 등 아방가르드 작가로 활동했다. 20권의 시집과 소설집을 냈고 소설가 무라카미 류 원작의 영화 '토파즈'에 출연하기도 했다.
정신병 치료는 그에게 '자기 표현의 정당성'과 '미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일본에서도 순수미술 작가들은 야요이의 작품을 논외로 치기도 하지만, 그는 젊은층의 우상이며 물방울 모티프는 패션과 영화로 상품화돼 사랑을 받고 있다.
야요이는 "앞으로 20년은 더 살고 싶다"며 "새로운 재료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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