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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판공비 문화" 이대로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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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판공비 문화" 이대로 좋은가

입력
2003.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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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권한은 막강하다. 특히 인사권이 볼 만 하다. 대통령이 임명장을 주는 단체장, 공기업 사장 자리만 해도 600개나 되며 대통령이 사실상 임명권을 행사하는 외곽 산하기관까지 합하면 수천 자리에 이른다. 이 수천 자리가 누리는 '풍요'가 놀랍다. 직원 12명에 1년 예산이 20억∼30억원에 불과한 작은 조직이라도 사장은 여비서와 기사 달린 승용차에 연봉을 9,000만원이나 받는다니 말이다.어떤 신문의 2월 8일자에 실린 작은 기사 내용을 소개한 것인데, 나는 왜 이런 게 1면 머릿기사로 다루어지지 않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고위 공직자들이 쓰는 판공비만 해도 연간 수천억원대, 아니 조 단위에 이를텐데, '판공비 문화'가 이대로 좋은지 따져볼 필요를 전혀 못 느끼는 걸까?

대통령의 막강한 인사권을 보면서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기 쉽지만, 그 내막을 잘 따져볼 일이다. 대통령은 한 자리 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에게나 '제왕'일 뿐 자신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의외로 많지 않다. 높은 자리에 좋은 사람을 앉히는 게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업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직자에게 청빈만을 요구할 수는 없다. 능력 있는 사람들을 공직으로 끌어 들이기 위해서도 공직자들에게 대우를 아주 잘 해줘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임명권을 행사하는 수천 자리에 대해선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이 나라 고위 공직자들의 상당수는 공사를 막론하고 너무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제법 깨끗하다고 알려진 고위 공직자들도 막상 재산을 까보면 보통 수십억원대다. 이건 지나치다. 그간 굶주렸던 사람들에게도 먹을 기회를 주자는 배려가 아니라면, 고위 공직자들의 과잉 풍요부터 억제해 '출세'의 개념을 바꿔줘야 한다. 그래서 '명예'와 '풍요' 사이에서 고민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그와 동시에 많은 국민이 공범으로 참여하고 있는 기존의 '회식 문화'를 바꿔야 한다. 이 나라에선 고급스럽게 밥과 술을 먹지 않으면 도무지 대화가 안된다. 민관(民官)을 막론하고 어느 조직에서건 높은 사람들은 그 밥 값 대느라 등골이 휘어진다. 돈 조달 능력이 리더쉽 능력을 결정하는 나라에서 부정부패 하지 말라는 건 죽으라는 소리와 다를 바 없다.

이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제도와 법만이 아니라 잘못된 문화까지도 개혁 대상으로 삼아 대안을 강구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 국민 혈세를 축 내는 호화판 회식문화부터 척결하지 않으면 개혁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고위 공직자들을 만나는 대학 교수와 언론인들부터 공짜로 밥 얻어먹는 관행을 버리고 각자 돈 내는 풍토를 만들어보자. 그렇게 되면 분수에 맞는 수준의 음식점을 찾게 될 것이고, 부담 없이 나누는 깊은 대화는 오히려 더 활성화할 것이다. "내가 얻어먹은 공짜 밥, 부정부패의 출발점이다"는 캠페인 구호를 열심히 외쳐 보자.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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