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검 평검사들이 17일 '대통령의 검찰 불간섭 선언'을 촉구한 것은 검찰 개혁을 추진중인 노무현(盧武鉉) 당선자 등에 대해 '집권 세력으로서 가질 수 있는 검찰 프리미엄'을 포기하라고 요구한 것이나 다름 없어 수용 여부가 주목된다. 평검사들은 또 '검찰총장의 각성' '정보보고 폐지' 등 전례없을 정도로 강도높은 내부개혁 주장을 내놓아 한동안 논란의 핵이 될 전망이다.대통령 불간섭 선언 촉구 의미
그 동안 정치권은 '검찰 중립성 훼손사범' 1순위자로 지목돼왔다. 이는 무엇보다 정치권, 특히 청와대와 여권 유력 인사들이 검찰 인사에 개입하거나 수사에 부당한 영향력 행사를 시도해왔기 때문이다. 이 같은 행태는 일부 검사들의 이해와 맞아 떨어져 능력과 무관한 '정실 인사'나 이에 대한 반대급부 성격의 '봐주기 수사'라는 악순환을 낳았던 것이 사실. 평검사들의 '직언' 은 결국 정치권을 향해 "더 이상 검찰 인사와 수사에 개입하지 말라"는 강한 경고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즉 핵심 사안인 두 분야에서부터 정치권의 입김을 완전히 배제한 뒤 단계적으로 '완전한 검찰 중립화' 를 이뤄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불간섭 선언의 주체로 '정치권'이 아닌 '대통령'을 선택한 것도 의지의 강도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실제 평검사들은 선언 주체로 정치권과 청와대를 넣는 방안을 놓고 논의하다 상징적 차원에서 대통령을 거명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도높은 내부 반성 요구
대통령의 검찰 불간섭 선언 촉구가 대외적인 경고의 메시지라면 검찰총장에 대한 각성 요구는 '내부에 대한 경고'의 성격이 짙다. 평검사들은 이날 김각영(金珏泳) 검찰총장에게 건의문과 함께 제출한 편지 형식의 별도 문건에서 "잘못된 인사와 정치권의 사건 개입 등으로 인해 눈치보기식 사건 처리가 있었던 게 사실이며 심지어 내부분열 사례가 초래되기도 했다"고 수뇌부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평검사들은 특히 "수뇌부는 이런 난맥상을 개선하지 못한데 대해 각성, 반성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달라"며 '과거 청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향후 조처를 철저히 감시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정치적 사건이나 권력형 비리 사건에 한해 내부 정보보고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눈여겨볼 만 하다. 검사들 사이에서는 특정사건에 대한 진행상황 등이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에게까지 정보보고 형식으로 올라가는 바람에 오히려 수뇌부의 수사간섭 요인으로 작용하는 사례가 빈번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한 검사는 "검사들 사이에서 '수사보다 정보보고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라며 "부당한 내부압력을 막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정치적 사건에 대한 정보보고는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 법무부와 대검, 서울지검만 왕복하는 소위 '귀족검사'의 폐지 수사착수나 불기소 결정 등의 과정에 외부기관을 참여시키는 등의 '국민참여제' 확대 고검 검사들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단독 부장제' 신설 등의 의견도 건의문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머리 끄덕이는 검찰 수뇌부
대검도 평검사들의 의지를 상당 부분 수용한다는 입장이다. 김 총장은 이날 평검사들의 개혁안에 대해 세차례에 걸쳐 '적극 검토→전향적 검토→적극적 수용' 등으로 톤을 높여가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 총장은 특히 "평검사들의 기개를 높이 살 만하다"며 과격할 정도의 진솔한 의견도 경청할 뜻을 내비쳤다. 검찰의 한 검사장급 간부는 "총장도 검사다"라며 개혁에 위 아래가 따로 없음을 강조한 뒤 "평검사들이 느끼는 것을 똑같이 알고, (개혁안을) 받아들이려는 열린 자세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평검사와 수뇌부의 이런 '동일체' 현상은 '개혁'과 '세대교체'라는 정치권으로부터의 외풍에 대한 공동대응 성격도 없지 않다. 타율적인 개혁보다 검찰 스스로 개혁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수뇌부는 하의상달식 개혁을 통해 흐트러진 조직을 추스리는 효과도 거두려는 계산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뇌부와 평검사들은 개혁에는 동의하되 각론에서는 의견 차이가 커 상당한 진통도 예상된다. "대학들도 직선제 총장 선출에 부작용이 많아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한 검찰 간부의 말처럼 인사, 특검제 등 현안으로 부각된 안건에 대한 의견조율이 필요한 상태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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