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서울지검이 17일 SK그룹에 대해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벌이고 최태원(崔泰源) SK(주) 회장을 출국금지한 것에 대해 크게 놀라며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전문경영인 출신인 손길승(孫吉丞) SK그룹 회장이 7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에 취임한 이후 새 정부와 유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검찰 수사가 신정부의 재벌 길들이기 신호탄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재계는 우선 신정부 출범이후 대대적인 전방위 사정작업이 예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이 재벌그룹 사무실을 직접 찾아와 압수수색을 한 '파격성'에 주목하고 있다.
신정부 주도세력 내부에서 재벌개혁의지가 퇴색하고 있다는 자성론이 일고 있다는 최근 분위기도 이번 수사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노무현(盧武鉉) 당선자가 전경련 주최로 12일 열린 신년하례식에서 새 정부 정책에 협력하겠다는 재계의 '러브콜'에 별다른 화답을 하지 않을 것도 이런 기류 때문인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삼성 LG SK 현대차 등 주요 재벌들은 이번 수사가 상속·증여세 완전 포괄주의 도입 등 4대 재벌개혁 과제와 맥이 닿아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SK와 LG, 한화, 두산 등 금융감독위원회에 의해 징계를 받았거나 참여연대에 의해 검찰에 고발된 그룹들은 이번 수사가 재벌 수사의 '방향타'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일종의 시범 케이스로 재벌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 표명인 것 같다"며 "현대의 대북 비밀 지원에 대한 비난 여론을 희석 시키기 위한 정치적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SK가 왜 주요 그룹 중 첫 타깃이 됐는지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우선 SK그룹의 주식 이면거래가 새정부 재벌정책 담당자들이 여러 차례 지적해 온 국내 재벌기업의 불투명성과 부도덕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점이 꼽혔다. 또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SK증권이 이 사건과 관련해 11억8,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는 등 실체가 어느 정도 밝혀져 수사가 비교적 손 쉽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기도 한다.
또 손 회장이 전경련 회장으로 취임해 그룹 실무에서 손을 떼면서, SK 지도체제가 투 톱에서 최 회장의 강력한 원톱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데 대한 새정부의 거부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함께 지난 대선 과정에서 SK가 야당 후보를 적극 후원했기 때문에 시범 케이스로 당하고 있다는 '정치보복설'도 일각에서 떠돌고 있다.
최 회장이 대표적인 재벌 2세 경영인이고 최근 전경련 회장으로 취임한 손 회장이 재계의 '얼굴'이란 점에서 이들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는 새정부의 재벌정책 방향을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경철기자 k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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