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1915∼2000·사진) 시인의 유작시 4편이 공개됐다. 동국대는 20일부터 3월 28일까지 교내 중앙도서관에서 개최하는 미당의 유품전을 앞두고 17일 '제야(除夜)' '곶감 이야기' '나의 길' '도로아미타불' 등 4편의 시를 공개했다. 미당의 제자인 윤재웅 동국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미당의 미발표 시는 100여 편에 이르며 고인의 사후 정리를 계속해왔다"며 "이번에 공개한 시는 미당이 1950∼1999년 기록한 시작노트 10권 중 8, 9권에 실려 있는 것으로 1993년 1월부터 1994년 10월 사이에 창작한 것"이라고 밝혔다.'음력으로 섣달의 그믐날 밤엔/ 얼어붙은 강물을 뛰어 건네서/ 호랑이 총각이 장가를 간단다./ 젊은 사내자식이 왜그리 찌푸러져/ 식은 재 되어 사위어가느냐?/ 식은재 되어 사위어가느냐!'('제야' 전문)
'손바닥 펼쳐보니/ 도로 아미타불이군!/ 주역이니 팔괘니/ 그런 건 무얼하나?/ 도로 아미타불이야!/ 도로 아미타불이야!'('도로아미타불' 전문) 등의 시에는 고인이 노년에 느낀 삶의 무상함이 배어 있다.
'곶감 이야기'는 근대화 이전 한국인의 삶의 모습을 전통 설화를 차용해 그린 작품으로 미당 특유의 토속적 미의식이 드러난다. '맨드래미 물드리신 무명 핫저고리에,/ 핫보선에, 꽃다님에, 나막신 신고/ 감나무집 할머니께 세배를 갔네./ 곶감이 먹고싶어 세배를 갔네./ 그 할머니 눈창은 고추장빛이신데/ 그래도 절을 하면 곶감 한개는 주었네./ "그 할머니 눈창이 왜 그리 붉어?"/ 집에 와서 내 할머니한테 물어보니까/ "도깨비 서방을 얻어 살어서 그래"라고/ 내 할머니는 내게 말해주셨네./ "도깨비 서방 얻어 호강하는게 찔려서/ 쑥국새 솟작새같이 울고만 지낸다더니/ 두 눈창자가 그만 그렇게/ 고추장빛이 다아 되어버렸지"( '곶감 이야기' 전문).
미당은 한편 '나의 길'에서는 끝없는 예술적 행로와 구도정신을 노래하고 있다. '내 길은/ 한정없이 뻗혀있는/ 안 끝나는 길이로라./ 산을 넘어 가면/ 또 산,/ 그 산 넘어도 또 산의/ 첩첩 산중 길이로라./ 사막을 건네가면/ 또 사막,/ 그 사막 넘어가도 또 사막뿐인/ 아득한 아득한 사막길이로라./ 그러나 이 길엔/ 바이칼 호수같은/ 세계에선 제일 깊고/ 세계에선 제일 맑은/ 호수물도 있나니,/ 이런 데서 쉬어쉬어/ 대어갈 길리로라'('나의 길' 전문).
윤재웅 교수는 "유품전에는 미당의 미발표 시 외에도 은사였던 석전 박한영 스님의 '석전시초' 번역 원고와 노자 '도덕경' 번역 원고 및 선친의 제사 때 쓴 제문, 모친상 때 문상객들에게 보낸 감사편지 등 고인의 일상과 창작생활을 느껴볼 수 있는 육필원고가 다수 전시된다"고 말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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