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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3> 낚시로 견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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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3> 낚시로 견딘 세월

입력
2003.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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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거덜냈던, 여전히 지금도 소진시키고 있는 록 음악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 문제는 곧 나의 본질과 직결된다. 이 관문을 거치지 않고서 나를, 또 한국의 대중 음악을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록 음악의 비밀을 캐기 위해 잠시 손을 댔던 애꿎은 대마초로 나는 물론 우리집은 다 날아 갔다. 비싼 변호사비를 대느라 살림은 결딴나 반포동의 아파트에서 동작동의 연립 주택으로 옮겼고, 요즘엔 부자동네로 변한 방배동의 연립 주택으로 다시 한단계 더 추락했다가 마침내 1986년 허허벌판이었던 이 곳 문정동까지 온 것이다.

법정 문제가 다 가라앉고 보니 아이들 셋은 먹을 것, 입을 것 조차 없는 알거지꼴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를 못 만나 목을 매던 음반 제작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모른 체 했다. 그런 건 약과였다.

500 와트 짜리 마샬 앰프와 지미 헨드릭스가 쓰던 팬더와 깁슨 기타 등이 그 북새통속에 다 날아간 것이다. 모두 오리지널 진품으로 지금은 구경조차 하기 힘든 것들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도 그 악기들이 생각난다.

우습지 않은가. 진작에 음악을 걷어 치운 아내는 올망졸망한 세 아들을 바라보며 끼니 걱정인데 가장이란 자는 콩밥 신세를 지고 나왔는데도 악기 타령이라니.

75년 4월 구치소에서 나오니 도대체 음악밖에 몰랐던 자가 음악을 빼니 할 일이라곤 없었다. 그것은 체제가 개인에게 가한 '살인 행위'라 믿는다. 그래서 노장사상에 관한 책을 보게 됐고, 이태원의 작은 카페에 들어가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독주를 털어 넣었다.

세상은 잔인했다. 나한테서 배운 사람들까지 "신중현은 폐인이다. 끝났다"고 소리쳤다. 내가 거기 있는 줄 뻔히 알고 벌이는 수작에 커피를 마시다 말고 다방 문을 박차고 나오는 게 내 식의 대응이었다. 하나 더 있었다. 너덜너덜한 피아트 승용차에 대충 도구를 챙겨 고기도 잡지 않는 낚시를 떠나곤 했다.

사람이 보기 싫을 때는 낚시가 최고다. 고기 한 마리 잡지 않고 물만 쳐다보고 있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안 보니 그것 이상 없다. 아무 데나 낚시대를 펴 놓고 있다가 자동차속에서 아무렇게나 구겨져 자면 됐으니. 3년을 그렇게 보냈다. 내가 요즘도 집을 두고 한 달에 절반을 이곳 '우드스탁'에서 칼잠을 자며 밥을 해먹는 것은 바로 그 때 굳어진 버릇이다. 왜?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들으면 몹시 서운하겠지만, 나는 내가 '홀'이란 사실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일반 사회와 정계는 물론 친구들조차 피하고 홀로 견뎌 내는 것이 내 삶의 방식이 된 것이다. 나는 그래서 내가 거처 없는 유목민이라고 생각한다. 안정된 생활에 대한 기대는 아예 하지 않는다. 기대를 해 봐야 허물어진다는 사실을 터득한 것이다. 내가 정이 없다는 소리를 들어도 달게 받겠다.

아내에게는 '나는 최선을 다 하고 있으니 그걸로 만족해 달라'는 말을, 세 아들에게는 '내 음악 작업을 잇고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말을 들려주고 싶다. 험악한 인생을 거치면서, '견뎌낼 수 있는 힘'이야말로 진정 필요한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 힘이 바로 록이다.

최근 월드컵을 전후해 록의 부활이다 뭐다 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결국 록을 빙자해 자신을 정당화하는 수작이다. 결국 록을 흉내내는 음악만 수두룩하지 않은가.

록이란 20세기 과학 문명에 긴밀하게 조응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자유를 표현하는 가장 위대한 장르다.

댄스 음악을 한 번 보라. 거기 인간의 자유가 있는가. 그러나 요즘은 록을 한다 해놓고 정작 쇼를 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진정한 록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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