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크 드 빌팽(49·사진) 프랑스 외무장관이 1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를 계기로 일약 국제 외교가의 스타로 떠올랐다.이날 안보리 회의에서 빌팽 장관은 프랑스인 특유의 열정적인 제스처와 수사를 섞어가며 "현 시점에서 군사공격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아직은 유엔 무기사찰단에 더 많은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역설,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연설에서 가장 주목받은 대목은 "전쟁은 언제나 실패한 처방이다"라는 단언. 영국 BBC 방송은 그가 "전쟁과 점령, 야만을 모두 경험한 '늙은' 유럽의 고언"이라며 이 말을 던질 때 청중 사이에 일순 전율 같은 것이 흘렀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부장관이 '늙은 유럽'에 대해 비아냥거린 데 대해 "프랑스는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왔던 자유의 전사들에게 진 빚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늙은'나라"라며 "전쟁 대신 평화에 다시 한번 기회를 주자"고 외쳤다. 국익을 고려해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으로 일관하던 각국 대표들조차 이 대목에서는 이례적으로 갈채를 보냈다.
앞서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사찰 연장보다 무장 해제"를 주장할 때 흐르던 침묵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그의 당당한 반대에 미국 조야는 비난에 나섰다. "아첨꾼" "진지함이 부족한 수사적 인물" 등 언론의 질타도 쏟아졌다. 대중지 뉴욕 포스트는 14일자 1면 안보리 회의 사진에 빌팽의 얼굴을 족제비로 대신해 비꼬기도 했다.
비난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그는 안보리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다음달 14일 다시 한번 안보리 외무장관 회담을 열어 사찰 결과를 논의하자"고 제안해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유명 정치가 집안 출신으로 프랑스 국립행정학교 졸업 후 인도, 미국 등에서 외교관 생활을 거친 그는 지난해 6월 우파의 총선 승리 후 외무장관에 임명됐다. 다소 거만하다는 평가와 함께 국제 무대에서 별다른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지만 최근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는 코트디부아르 내전 사태 해결에 숨은 공로자이기도 하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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