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들이 말을 배우고, 개념을 익히며, 법칙화하는 것을 보면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아이들의 학습능력은 거의 본능적인데 이는 우리의 뇌에 있는 '학습 프로그램' 덕분이다. 그러나 교육현실은 이러한 뇌 원리와 동떨어져 있다. 14일 성균관대에서 열린 제1회 뇌기반 학습과학 심포지엄에서 교육·뇌과학·인지심리학 전문가들은 "교육의 위기, 이공계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선 교사로부터 지식을 전달받는 전통적 교육이 학생 중심의 학습 패러다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며 교육환경의 쇄신을 주장했다.뇌가 좋아하는 학습, 싫어하는 학습
"하기 싫은 걸 어떻게 외워요?" 흔히 들을 수 있는 항변은 최근의 뇌 연구에서 근거있는 사실로 드러난다. 뇌는 기능에 따라 인지적 뇌, 정서적 뇌, 동기적 뇌, 실행 뇌, 사회적 뇌로 나뉘는데, 학습 중 느끼는 정서가 학습수행에 직접적 영향을 끼친다는 얘기다. 고려대 교육학과 김성일 교수는 "정서적 뇌는 인지적 뇌, 동기적 뇌와 각각 연관돼 있다"며 "학습때 스트레스를 느끼면 심리생리학적 반응으로 무기력감, 피로감이 나타나고, 복잡하고 창의적 문제해결을 회피하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생존을 위한 문제해결 과정을 통해 진화한 인간의 두뇌는 과학을 가장 좋아할 만하다. 과학은 정보를 모으고, 가설을 세우고, 정보를 평가해 문제를 해결하는 등 '뇌가 학습하는 과정'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의 과학교육은 문제해결 중심이 아니라 단지 과학지식을 이해시키는, 이른바 '뇌가 싫어하는 학습'이다.
창의적 사고와 비판적 사고는 하나
서울대 철학과 김영정 교수는 "과학학습에서 창의적 사고는 비판적 사고 안에 포섭된다"고 강조했다. 보통 '벽돌로 무엇을 만들 수 있느냐'는 문제에 많은 답을 내놓는 확산적 사고를 창의성으로 정의하는데, 역사적 과학의 발견은 이러한 협의의 창의성을 넘어선다. 김 교수는 "행성간 중력을 공간 개념으로 이해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정보를 변형·조합한 전형적인 '형태의 발상전환'"이라며 "창의적 발상의 요체는 다양한 아이디어 산출만 아니라 아이디어가 문제를 해결하는지 파악할 줄 아는 통찰력"이라고 말했다.
수학·과학 영재에 대한 뇌기능 검사는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좌뇌는 언어와 수, 분석적 사고, 세부적 고찰, 직선적이고 상징적 표상을 담당한다. 또 우뇌는 음악과 정서, 시각적이고 상상적 속성, 전체적 고찰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재들의 두뇌 활동은 우뇌가 우세할 뿐 아니라 좌·우반구 연결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비과학적 교육은 가라
성균관대 심리학과 이정모 교수는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 등 선진국에서 '학습과학'이 정보기술(IT), 생명기술(BT)과 같은 선진 과학기술분야로 인정되고 있다"며 범정부 차원의 관심을 촉구했다. 미국의 국립과학재단은 '21세기 인력을 위한 학습'이라는 장기 프로젝트에 올해에만 7,900만달러(약 950억원)를 지원하는 등 학습과학을 중요정책으로 삼고 있다.
이 교수는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과학적 학습체제로의 교육개혁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 뇌발달 연령별 교육법
서울대 의대 서유헌 교수는 뇌 발달 단계에 따른 연령별 교육방법을 주장했다.
태어나서 만 3세까지는 뇌의 기본 골격과 회로가 발달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5감을 통한 고른 자극이 필수적이다. 3∼6세엔 사고와 인간성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 부위의 신경회로 발달이 최고조에 이른다. 이 때는 인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기본 인성을 갖추게 된다.
본격적인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교육은 그 이후에야 효과적이다. 초등학교 시절인 7∼13세에 전두엽에서 뇌 중간부위까지 뇌 회로가 발달해 입체 공간적 인식기능을 하는 두정엽과 언어 이해 기능을 하는 측두엽 부위로 옮겨온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폴 톰슨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연상사고와 언어기능을 담당하는 칼로좀 이스무스 영역은 6∼11세에 80∼85% 성장한다. 때문에 영어 등 언어 교육은 더 이르거나 늦은 시기엔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 13∼15세엔 뇌 뒤쪽 후두엽이 발달,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선명하게 알고 외모 등에 관심을 갖게 된다. 세종대 교육학과 박주용 교수는 고차적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20∼30대까지도 성장한다는 연구결과를 들어 영재교육이 이를수록 좋다는 주장은 근거가 미약하다고 밝혔다.
/김희원기자
■ 뇌 관련 재미난 사실
지능 높을수록 뇌 적게 쓴다
지능이 낮은 사람은 높은 사람보다, 초보자는 전문가보다 많은 영역의 뇌를 쓴다. 적절한 뇌 영역을 찾지 못해 불필요한 부분까지 쓰기 때문이다. 반복학습은 뇌 신경을 변화시켜 결국 뇌를 적게 쓰게 한다.
수학 잘하는 여학생이 뇌 효율적
수학성적이 보통인 경우는 남녀 차이가 뚜렷하지 않다. 반면 수학을 잘 하는 여학생은 비슷한 남학생보다 뇌를 더 효율적으로 쓴다.
간단한 계산은 손가락 세기에서 나왔다
두 자릿수의 간단한 연산을 할 때는 운동과 관련된 뇌 영역이 활성화한다. 인간이 수를 배울 때 손가락을 쓴 것과 관련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명상상태에서 창의력 나온다
창의력을 요하는 수리연산이나 논리추론 문제를 풀 때 뇌에서 베타파가 강해진다. 창의성은 명상상태와 같은 집중이완상태에서 발휘된다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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