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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라이프 / 서초토요 벼룩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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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라이프 / 서초토요 벼룩시장

입력
2003.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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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디건 작년에 사서 딱 한번 입었어요. 5,000원이면 거저예요." "좀 비싸다.천원만 빼죠."

15일 아침 서울 서초구청 옆 골목. 물건을 사고 팔려는 사람들끼리 값을 흥정하느라 주변이 시끌벅적하다. 서초구가 1998년

1월부터 매주 토요일 여는 서초토요벼룩시장. 외환위기 직후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기)운동'의 일환으로 구청 옆 150m 이면도로에서 마련한 이 행사는 이제 인근 주민뿐 아니라 지방 판매자까지 하루 2,000∼3,000명 몰릴 정도로 유명해졌다.

30만∼40만원짜리 가죽 코트가 단돈 1만원이고 웬만한 스웨터도 2,000원이면 족하다. 정찰가가 없으니 값은 흥정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니트 티셔츠 수저세트 카세트테이프 등을 들고 나온 최혜영(24·서울 서초구 잠원동)씨는 15일이 '영업' 첫날이다. 두건 두르고 선글라스까지 낀 멋쟁이 차림이지만 손님이 흐트러놓은 물건을 정리하느라 좌판 위를 맨발로 오가고 있다. 얼마 전 이곳에서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나도 한번 해볼까"하며 나왔단다. 쓰지는 않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물건을 들고 왔다는 그는 "흥정이 서툴러 너무 싸게 파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면서도 "물건 파는 재미가 너무 쏠쏠해 벌써부터 다음주에 뭘 갖고 나올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초토요벼룩시장에는 최씨처럼 "혹시나"하고 나왔다가 '전문꾼'이 된 이들이 많다. 성남에서 왔다는 장지영(45)씨는 "처음에는 남편이 집안 망신시킨다며 반대했지만 이젠 매주 짐을 날라주는 '동업자'가 됐다"며 "이곳에 한번 빠지면 누구도 말릴 수 없다"고 말했다.

복지시설, 아파트부녀회 등은 지원받은 옷이나 수거함 속의 옷을 깨끗이 세탁해 들고 나오기도 한다. 방배동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자원봉사자 송정민(고2)군은 연구소에 들어온 옷 가운데 맞지 않은 것을 골라 가져왔다. "자원봉사도 하고, 장사로 세상물정도 배우고 일석이조 아닌가요."

쓰던 물건만 팔도록 정해진 이곳에는 역시 옷이 가장 많지만 다른 물건도 적지 않다. 2만원 가격표가 붙은 산악자전거가 있고 시계, 구두, 핸드백과 줄 끊어진 기타, 골프채, 킥보드까지 있을 것은 다 있다. 청바지만 모은 전문 판매상과, 유명 해외브랜드만 골라 파는 '명품관'도 있다. 장난감 로봇과 인형이 가득한 장난감 좌판은 아이들의 발길이 멈추는 곳. 벼룩시장은 재활용의 산교육장. 아껴쓰고 절약하는 것을 보고 배우라며 일부러 아이를 데려온 부모도 있다. 시장 한쪽 편에선 동네 할아버지 서너명이 구입한 물건을 꺼내보고 서로 자랑이 한창이다. 선그라스를 쓰고 허리띠를 둘러보는 이들의 얼굴에서 옛 장터의 흥겨움이 오랜만에 되살아난다.

매주 우면산, 청계산을 등산한 뒤 이곳을 들른다는 김정옥(57)씨는 "물건은 사도 좋고 안사도 그만"이라며 "좌판을 기웃거리며 물건 하나하나에 담긴 추억을 상상하고 이곳 사람들의 알뜰한 삶의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풍족해진다"고 말했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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