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한은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160㎞ 떨어진 궁벽한 바닷가 마을. 가까운 도시인 바탕가스에서 비포장 도로로 24㎞를 가야 하고, 지금도 반정부 게릴라들이 가끔 출몰한다. 이곳엔 천지가 개벽되고 상전(桑田)이 벽해(碧海)가 되는 일이 일어났다. 필리핀 최대는 물론, 세계 최첨단 가스복합 화력발전소가 들어섰기 때문. 설비용량은 120만㎾. 필리핀 전체의 발전설비용량 1,300만㎾의 거의 10분의 1을 차지한다. 지난해 11월에 있었던 준공식에는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도 참석 했다. '운영후 양도'(BOT) 방식으로 건설된 이 발전소는 20년이 지나면 발주처인 필리핀 전력공사에 넘겨진다.■ 일리한 기적의 주인공은 한국전력의 필리핀 현지법인. 필리핀 한전은 1996년 일본 미쓰비시상사 등 6개사가 참여한 국제 경쟁입찰에서 이겼다. 총투자비 7억1,000만 달러 중 한전이 51%를 부담했고, 나머지는 미쓰비시상사와 미국의 미란트사 등이 출자했다. 양도시점인 2022년까지의 예상 순수익은 8억달러. 여기에 대림건설 등 유관업체의 부수이익 1억4,000만 달러가 추가된다.
■ 일리한의 오늘은 말라야의 과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말라야는 마닐라 근교 동남방에 있는 라구나 호숫가에 있다. 마닐라까지는 60㎞. 필리핀 한전은 1995년 역시 국제경쟁 입찰을 통해 설비용량 65만㎾인 말라야 화력 발전소의 성능복구 운영사업(ROMM)을 땄다. ROMM은 폐기 직전인 발전소의 성능을 복구해 운영하다 되돌려 주는 것이다. 1998년 복구공사가 끝나 지금까지 무사고 운전중이다. 2010년에 역시 필리핀 전력공사에 넘겨준다. 이때까지의 예상 수익은 2억달러.
■ 필리핀 한전은 지난해 순이익 4,500만달러를 기록해 순이익 기준으로 필리핀 25대 기업에 들어갔다. 일리한이 본격 가동되는 올해에는 10대 기업이 된다. 필리핀 한전은 또 다른 필리핀 전력사업에의 진출을 추진하는 한편, 동남아 시장도 노리고 있다. 한전의 필리핀 성공은 공기업도 진취적 정신과 전문적 능력을 갖추면 사기업 못지 않은 활발한 해외시장 개척을 할 수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이병규 논설위원veroic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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