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비밀 지원 사건의 진상은 더 규명돼야 하며, 방법은 국회 조사를 해 본 다음 의혹이 있으면 특검을 하는 게 좋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14일 대북 비밀 지원 사건 해명·사과에 대한 한국일보의 15일 여론조사 결과는 이렇게 요약된다. 한나라당이 이달내 특검 관철을 다짐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이 같은 여론의 흐름은 여야의 협상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나라당의 특검법안 단독 처리 방침에 대해 찬성(56.2%)이 반대(42.2%)보다 많았지만 찬성 의견의 수치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이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관심이다.
우선 김 대통령의 해명·사과 자체에 대해 응답자의 12.1%가 '매우 불만족' 평가를 내리는 등 '불만족스럽다'는 의견이 58.0%를 차지, 이번 사건을 보는 국민의 냉정한 시선을 알게 했다. 그러나 처음 사건이 터져 나왔을 때 격앙했던 여론에 비춰 이번에 '만족스럽다'는 의견이 41.1%로 조사된 것은 그나마 청와대에겐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만족 평가는 60세 이상(50.4%) 학생층(50.0%) 호남지역(73.3%)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 연장선상에서 향후 사건의 처리방향에 대해 '진실규명 작업이 계속돼야 한다'는 응답이 56.5%를 차지, '이 수준에서 마무리하자'(43.5%)는 의견을 앞지른 것은 논리적으로 당연한 귀결로 비쳐진다. '진상규명 작업을 계속 해야 한다'는 의견은 50대(63.8%) 화이트칼라(61.4%) 대재 이상(61.4%)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나왔다.
지역별로는 두 지역 모두 반DJ성향이 강한데도 부산·경남(PK)과 대구·경북(TK)의 평가가 뚜렷하게 엇갈린 게 눈길을 끈다. PK지역의 경우 '이 수준서 마무리' 응답이 수도권과 엇비슷한 40.3%인 데 반해, TK지역에서는 '진상규명 계속'(87.6%)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가 PK 출신인 점이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추측도 가능하다.
'진상규명 계속' 응답자 452명을 대상으로 물어 본 규명 방식 1위로 '국회 증언 후 의혹 있으면 특검 도입'(41.8%) 방식이 나온 건 여야 모두에게 아전인수격의 해석을 가능케 하는 부분이다. 대통령 사과·해명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특검제 즉각 도입 의견이 70%를 넘었던 것을 감안하면 일단 김 대통령이 여론의 흐름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돌리는 데는 성공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그러나 한나라당으로선 '특검제 즉각 도입' 의견이 35.4%를 차지한 것까지 함께 묶어 특검론을 계속 밀어붙이려 할 소지가 충분하다. 반면 여권으로선 '관련자 국회 증언' 7.5%를 한 묶음으로 파악, '국민 여론'을 주장하며 선 국회 조사를 강하게 요구할 수도 있다. 국회 증언 후 특검 도입 응답은 30대(46.1%) 화이트칼라(49.95%) 대재 이상(45.9%) 인천·경기(51.3%)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특검 또는 검찰 수사로 실정법 위반이 드러나면 관련자들은 '형사처벌 해야 한다'는 응답이 52.0%를 차지, 반대론(44.4%)보다 다소 우세했다.
/김성호기자 shkim@hk.co.kr
■"盧, 국회맡기고 간여말라" 39.4%
국민 중 다수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게 취임 이후 대북비밀지원 사건 처리와 관련해 김대중 대통령과 일정 거리를 둘 것을 요구하면서 현 정부가 펴 온 대북정책의 수정도 아울러 주문했다.
노 당선자의 취임 후 사건 처리 방향에 대해 '(특검 등) 모든 것을 국회에 맡기고 간여하지 말아야 한다'가 39.4%, '검찰에 즉각 수사를 지시해야 한다'가 34.1%로 나온 것은 노 당선자의 DJ차별화 정책과 관련해 의미 있는 대목이다. 국민의 70% 이상이 이 사건에 관한 한 노 당선자의 중립적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한나라당을 설득하는 등 김 대통령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은 24.5%에 머물렀다. 이 수치도 적은 것은 아니지만 노 당선자를 압박하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한 듯한 느낌이다.
노 당선자의 위치 설정에 대해선 지역별 견해 차가 두드러졌다. 대구·경북, 부산·경남 지역 응답자의 86.5%, 82.9%가 검찰 수사 지시나 국회 위임을 요구한 반면 광주·전남·전북은 '김 대통령 보호' 의견이 54.4%에 달했다. '불간여' 견해는 30대(43.6%) 자영업(42.1%) 대재이상(41.2%) 충청(48.1%)에서, '즉각 검찰 수사 지시' 의견은 20대(36.3%) 화이트칼라(38.0%) 고졸(37.8%) 대구·경북(48.3%)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나왔다. 'DJ 보호' 주장은 60세 이상(31.5%) 블루칼라(30.0%)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새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에 대해선 과정상의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컸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54.1%)이 북한의 실질적 변화와 연계하는 상호주의적 정책을 주문했다. 20대(57.5%) 30대(56.4%) 젊은 층과 학생(60.5%) 화이트칼라(57.5%) 층에서 이러한 조건부 지원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비판적 목소리가 높았던 대구·경북에서는 상호주의 전환 요구가 67.4%에 달했다. 국회의 동의, 사후 검증 등 최소한 절차의 투명성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36.5%로 조사돼 국민 10명 중 9명(90.6%) 꼴로 현 정부가 추진해 온 대북 정책의 방향 전환을 기디했다.
'현 정부처럼 강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3.1%)나 '대북 지원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4.9%)는 의견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불가피한 선택" 63% 20대·고학력자 많아
15일 여론조사 결과는 대북문제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이중적인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사과·해명에 대해 50%이상이 '불만족스럽다'고 응답한 반면, 60% 이상은 정부의 대북 비밀접촉과 대북 송금편의 제공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 언뜻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한 결과는 남북관계 특수성에 대한 국민적 이해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2000년 6월 정상회담 추진 과정을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는 인식은 20대(74.6%) 학생(82.9%) 등 저연령, 고학력 층에서 두드러지게 높이 나타났다.
여론 형성 측면에서 2030세대의 위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대북 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데 대한 이해가 앞으로도 상당 수준으로 유지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앞으로 여야가 해법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도 이 점이 감안될 개연성이 충분하다.
그러나 응답자의 51.3%가 '현대의 2억 달러는 정상회담에 대한 대가의 성격이 강하다'고 받아들인 점은 또 다른 측면에서 해석돼야 한다. DJ의 대국민 사과에도 불구하고, 남북 정상회담 추진 과정의 금전 거래 가능성에 대해 여전히 적잖은 국민이 의혹을 품고 있다는 반증이다.
대북송금을 정상회담 대가로 보는 의견은 40대(58.4%) 화이트칼라(59.1%) 대재이상(56.1%) 서울(56.2%)에서 상대적으로 많았다. '독점권 대가'는 20대(50.3%) 학생(47.4%) 호남(50.0%)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나왔다.
2억 달러의 성격에 대한 이 같은 부정적 시각은 'DJ가 노벨평화상을 받기 위해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무리하게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는 야당 주장에 대한 공감도로 이어졌다. 공감한다는 견해가 57.0%(전적 11.3% 대체로 45.8%)로 공감하지 않는다(전혀 17.5% 별로 23.0% 등 40.5%)는 쪽보다 훨씬 많이 나타났다.
대북 비밀 사건을 주도한 인물로 김 대통령을 꼽은 응답자가 48.8%나 된 것은 이 사건이 김 대통령의 정치적 도덕성에 상당한 흠집을 냈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정주영(鄭周永) 정몽헌(鄭夢憲) 씨 등 현대측 인사가 18.0%로 뒤를 이었고 야당의 공격 표적이 돼 온 박지원(朴智元) 청와대 비서실장은 16.8%, 임동원(林東源) 통일특보는 2.3%였다. 실무적으로 간여 정도가 더 강한 임 특보보다 박 실장을 주도자로 지목한 사람이 더 많은 것은 그의 '유명세' 탓으로 해석된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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