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염 글·이억배 그림 길벗어린이 발행 5∼10세용·8,500원빈둥빈둥 놀면서 남의 피나 빨아먹고 사는 파리나 모기는 열심히 일하는 황소가 미련해 보였다. 그래서 황소를 우습게 보고 들러붙어 괴롭히다가 큰 코를 다친다. 점잖게 참고 있던 황소가 벼락처럼 휘두른 꼬리채에 맞아 나가떨어지고 만 것이다.
해방 전후에 활동한 아동문학가 현동염의 '모기와 황소'는 이 간단한 줄거리에 반듯하지 못한 세태를 비판하는 날카로운 칼을 품고 있다. 소파 방정환이 만든 잡지 '어린이'의 1949년 5월호에 발표한 작품이니 반 세기가 넘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풍자 정신은 세월의 풍화를 견디고 여전히 생생하게 다가온다. 작가는 변변찮은 파리 모기가 황소를 만만하게 보고 비웃다가 화를 자초하는 이야기를 익살맞고 통쾌하게 그리고 있다. 어린이를 위해 씌어진 100줄 남짓한 짧은 글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좋을 빼어난 우화이다.
모기는 황소에 달려들었다가 나동그라진 파리를 비웃으며 으스대다가 결국 자신도 황소의 한 방에 나가떨어지고 만다. 그걸 보고 파리가 말한다. "그놈이 그처럼 남을 깔보고 남을 속이고 남의 피를 마음껏 탐내더니 그만 소 벼락을 맞고 말았구나."
황소와 모기, 파리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닮았다. 작가는 파리의 입을 빌어 세태를 꼬집는다. "소로 말하면 피땀이 나도록 일을 하고 먹는데, 자네로 말하면 낮에는 이렇게 낮잠이나 자다가 저녁이 되면 슬쩍 나타나서 남의 살과 피를 공짜로 빨아 먹으려만 다니니, 그래도 죄스러운 생각이 없단 말야. 나도 역시 자네와 비슷한 놈으로 양심상 죄스러울 때가 많으니 말일세…."
이 책은 좋은 글과 좋은 그림이 결합한 아름다운 그림책의 보기라 할 만하다. 구수한 입말이 살아있는 힘있는 글도 훌륭하지만, 일러스트레이터 이억배의 정성을 다한 그림도 감탄스럽다. 황소와 파리, 모기의 잔털 한 오라기까지 놓치지 않으면서 황소의 눈매에 온갖 표정을 담아낸 솜씨는 압권이다. 순하고 느긋하게 내리 깔거나, 화가 나서 흘겨보거나, 얄미운 모기를 때려눕힐 기회를 보며 '요놈, 어디 두고 보자' 하고 벼르는 황소의 눈매를 보는 재미가 글 읽는 재미에 못지않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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