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하기 불안하다는데, 나도 답답하다. 불안의 실체가 뭐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힘들다. 내가 일방적으로 노동자 편을 들겠다는 것이 아니다."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는 14일 서울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전경련 최고경영자 신년포럼에서 예상했던 만큼 강도 높게 재벌을 질책하거나 호통치지 않았다. 물론 개혁의지를 명확히 밝히긴 했지만 오히려 불안해 하는 기업인들을 안심시키고 '기업할 맛이 나는 나라로 만들겠다'며 용기를 북돋워준 측면도 있었다.
노 당선자는 특히 노조문제에 대한 기업인들의 불안을 의식한 듯, "노동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우차를 GM에 팔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 나"라며 "염려 말라"고 당부했다. 그는 또 "노동자에 대해 '설득'과 '법'이라는 두개의 도구를 적절하고 균형 있게 사용하겠다"고 약속했다. 노 당선자의 이 같은 '기업 안심시키기'는 무디스의 신용등급 전망 하향 등에 따른 불안감 확산을 막고, 손길승(孫吉丞) 신임 전경련 회장 취임 후 새정부 정책에 적극적인 협조 의사를 나타내는 재계와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취지로 보인다.
노 당선자는 그러나 집단소송제 등 개혁작업은 예정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무엇보다도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강력히 주문했다. 노 당선자는 "최근 민영화한 기업 중 임자 없는 기업 형태를 보이거나 최고경영자(CEO)가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 마치 CEO의 전유물로 전락한 듯한 느낌 주는 기업도 있다"고 질책했다. 또 "쓸만한 기업들은 거의 4대 재벌로 편입됐다는 지적과 지나친 경제력집중이 사회통합을 해치고 있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며 "기업의 투명성과 지배구조가 개선됐다고 하나 외국투자자들의 눈에는 여전히 미흡하다"고 말했다.
노 당선자는 최근 급속한 냉각조짐을 보이고 있는 우리 경제에 대한 해법도 제시했다. 우선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3대 현안으로 이라크전, 북핵문제, 내수침체를 꼽았다. 그는 이중 가장 역점을 두는 과제로 북핵 문제를 들며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만은 없도록 하고, 전쟁 불안심리도 하루 빨리 걷어내겠다"고 말했다. 노 당선자는 "내수위축은 재정 조기집행만이 선택 가능한 유일한 대안"이라며 "민간소비를 부추기는 정책을 채택할 만큼 경기상황이 나쁘지도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이상으로 너무 큰 우려를 하지 않는 것이 경제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남대희기자 dhnam@hk.co.kr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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