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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잉카속으로

입력
2003.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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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조 지음·풀빛 발행·2만3,000원해외 여행이 보편화했지만 그래도 남미는 선뜻 발길이 가지 않는 곳이다. 원주민들이 몽고 반점이 있고 농업이 생업인 데다 생김도 우리와 비슷해 어딘지 친숙하지만 낙후한 지역이라는 생각이 여행 의욕을 꺾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국내에는 이 곳에 대한 여행 안내서나 문화 소개서가 그리 많지 않다. 좀 제대로 된 책을 꼽으라면 번역한 문화·역사 안내 책자 몇 권이 고작이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은 값지다는 상찬을 들을 만하다. 저자가 1년 동안 현지를 여행하고 20여 권의 영어·스페인어 원서를 독파해 가며 모은 잉카 문명의 역사와 문화, 유적 자료는 이 지역에 대한 작지만, 참으로 꼼꼼한 안내서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그뿐 아니다. 500쪽에 가까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잉카속으로'는 보물에 가깝다는 생각까지 든다. 잉카의 역사와 문화 전체를 자세하고 재미있게 소개한 것은 물론 남미 여행자들이 숙박 가능한 곳,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는 가게나 치안 상태, 원주민과 의사 소통을 위한 간단한 케추아어(잉카 고유어)까지 수록했다.

예를 들어 스페인의 잉카 침략사에서 가장 놀랍거나 믿기지 않는 대목 중 하나로 수백 명의 스페인 병사들이 수만 명의, 많게는 수십만 명의 잉카군과 싸워 이길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라며 저자는 잉카 침략에 대한 책을 읽다 보면 기껏 활이나 창밖에 지니지 못했던 잉카인들이 마치 대포와 총칼로 무장한 터미네이터(스페인 병사)와 싸웠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썼다. 하지만 최종 판단을 독자에게 맡기며 그는 당시 잉카와 스페인의 무기, 전술, 병력을 3쪽에 걸쳐 자세히 소개했다.

직접 찍은 400여 장에 이르는 사진, 제법 솜씨 있게 그린 유물 그림은 책에 멋을 더한다. 집필 동기가 국내의 안내 책자들이 외국책의 단순 번역에 그친다는 문제 의식에서임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10여 곳이 넘는 크고 작은 유적지의 꼼꼼한 지도를 여러 장 붙여 놓았다.

저자는 권두에 이렇게 썼다. "남미에서 인디오라는 말을 쓰지 말았으면 한다. 이 호칭은 백인이 흑인을 비하해 부르는 '니그로'나 일본인이 한국인을 멸시해서 쓰는 '조센징'과 비슷한 어감의 말이다." 그래서 책에서는 남미 토박이들을 '원주민'이라고 했다.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여행 관련 책의 1%만이라도 이 책을 닮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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