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기 전 2월, 이곳 출판사들은 제동장치에 오른발을 올려 놓은 채 천천히 봄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불황과 전쟁에 대한 예감으로 세상은 이미 정신적 전운이라는 우울한 필터 아래 놓여있어도 출판사들은 그 지독한 불확실성 저 편에서 인간정신을 기습해 올 문학적 절창을 기다리고 있다. 여차하면 발 아래 놓인 제동장치를 힘껏 밟을 각오를 한 채 말이다.이 봄 귄터 그라스나 마르틴 발저 같은 노장들의 신작은 없다. 지난해 뷔히너문학상 수상자였던 볼프강 힐비히의 신작소설 '정의로운 자들의 잠', 탐미적 문체의 중견작가 빌헬름 게난지노의 소설집 '여자, 둥지, 소설', 한 뉴욕서적상의 정신적 리포트인 스테펜 멘싱의 소설 '야콥의 사닥다리'가 봄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의 노장 필립 로스의 '임종의 짐승', 스페인 작가 하비어 마리아스의 '백색 심장', 헝가리 작가 산도르 마라이의 '어느 혼인의 변모' 등의 번역본들도 이 해빙기 출판계의 야심작들이다.
32세의 여자 유디트 헤르만이 두 살 난 첫아들에게 헌정한 256페이지 짜리 단편집 '몽상'이 화제다. 헤르만은 4년 전 데뷔작 '여름별장, 그 후'로 독일문단이 고대했던 문학적 신동이란 찬사와 함께 크라이스트문학상, 엄청난 판매부수, 17개 국어로 번역되는 극적 성공을 한꺼번에 거두어냈다. 애정의 분열적 상황을 견고하게 해부한 아홉 편의 단편이 담긴 이 작품집은 미립자적인 관찰의 힘, 극사실적 문체, 그 위에 감도는 시적 안개들로 인해 독자들을 거의 중독시키다시피 한다는 찬사를 받았다. 반면 그녀는 지난 4년 간 그 돌연한 성공이 주는 엄청난 중압감과 책임감이라는 독을 혼자 앓아냈다. 4년 간의 침묵 중 그녀는 첫아들을 출산했고 마침내 젊은 연인들의 사랑의 좌초를 적은 두 번째 소설집을 출간한 것이다. 휘셔출판사는 초판 10만 부를 출고한 채 이 문학적 신동이 만들어낸 4년 전의 그 마법이 다시 유효할 것인지를 기다리고 있다.
사랑 한가운데 있지만 아직 시작되지 않은 사랑, 시작도 되기 전 소멸돼버리는 사랑, 삶이라는 배낭을 메고 방황하지만 단 한번도 그 배낭을 풀어본 적이 없는 도상에서의 삶, 주소도 둥지도 준비되지 않은 미래를 향해 강을 건너는 젊은 정신들, 행복과 의미에 굶주린 이 세대에게 아무것도 판매할 것이 없는 그야말로 무(無)의 상점이 되어버린 삶, 그것이 애수적인 용모의 이 젊은 작가가 겨울과 봄의 국경에서 독자들에게 고발하는 사랑의 정체이다. 한 언론인은 서평에서 이 작가에게 "당신의 작품을 기다리기엔 4년은 너무 길다. 당신의 작품은 우리를 중독시킨다"라고 썼다.
강 유 일 소설가 독일 라이프치히대학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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