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실 구석에서 한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놀라 달려간 사이 다른 한쪽에선 주먹질이 오가고 결국 코피가 터지고 나서야 싸움이 멎었다. 10분의 휴식 시간 동안 4명의 아이가 울었고 멀쩡했던 의자 다리가 부러지고 두 명이 다툼 끝에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한숨이 절로 새어나왔다. 어짜자고 내가 겁도 없이 이런 일을 하겠다고 나섰나 후회스럽기만 했다. 연극을 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로 찾아낸 게 아이들과 연극 만들기였다. 그러나 사회복지시설 아이들과의 작업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아이들의 눈은 짜증과 원망과 경계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공연을 봐줄 엄마 아빠도 안 계신데 뭣하러 연극을 하느냐며 돌아앉는 아이도 있었고, 연극은 너무 하고 싶지만 보육원에 살고 있다는 게 학교 친구들에게 알려질까 봐 겁내는 아이도 있었다.첫눈을 핑계 삼아 수업을 일찍 마친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잘 하고 있던 한 아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누구랑 싸운 것도 아니고 야단을 맞은 것도 아닌데 아이의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이는 울먹이며 죄송하다고 했다. 그냥 눈물이 난다고, 왜 그러는지 자기도 모르겠다고, 가끔 이런다고, 한참 울고 나면 괜찮아진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아이의 손을 잡고 울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리는 것 말고는.
맥없이 보육원을 나오는 내게 원장 선생님께서 흰 봉투 하나를 내미셨다. 아이들에 대한 자료였다.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나 어떤 경로를 거쳐 이곳까지 오게 됐는지 간단하게 적혀 있었다. 아이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기가 막힌 일들에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길해연,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나마 남아있던 자신감마저 사라져버리고 발뺌할 궁리만 하고 있던 그때 만난 책이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내일을여는책 발행)이었다. 17년 간 아이들을 가르쳐온 작가 하이타니 겐지로는 그 책을 통해 내게 좋은 충고를 해주었다. 괜찮다고, 해보라고, 당신처럼 마음 약하고 행동으로 제대로 옮기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을 테니 그런 아이들과 발을 맞추어 함께 걸어 가보라고, 가르치려 들지 말고 배우라고, 흙투성이가 됐건 피투성이가 됐건 아이들과 함께 뒹굴어 보라고….
그해 겨울이 끝날 무렵 아이들은 멋진 공연을 해낼 수 있었고 나는 최선을 다한 내 자신에게 아이들을 당당하게 안을 수 있는 자격을 줄 수 있었다.
길 해 연 연극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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