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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1> 육순 소년의 꿈을 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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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1> 육순 소년의 꿈을 싣고

입력
2003.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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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음악의 나날'(All The Days Of Peace & Music).나의 모든 것이 담긴 라이브 록 클럽 '우드스탁'의 삐걱대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맨 먼저 눈에 띄는 문구다. 나는 비둘기가 전기 기타에 앉아 있는 유명한 그림을 확대 복사해 송판에 붙인 뒤 꼼꼼하게 윤곽대로 파 색깔을 넣었다.

1986년, 그렇게 해서 나는 당시 빌딩이라곤 단 세 채만 있을 뿐 황량한 벌판이었던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나의 또 다른 출발점을 만들었다. 지금은 내부 수리중이라 라이브 무대는 쉬고 있으나, 나는 여기서 여전히 꿈꾸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30여명이 앉으면 꽉 차는 객석 앞의 무대에는 '한산섬(부제-거북선에서)' '요강' '금강산' 등 최근 내 생각을 가감없이 담은 미발표 곡들의 악보가 7대의 전자 기타 속에 흩어져 있다. 함께 나뒹구는 휴대용 가스레인지, 이천쌀 포대, 녹차, 지미 헨드릭스의 DVD 등이 요즘 내 생활을 잘 말해 준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이란 베트남전의 광기가 날뛰고 있던 1969년 무려 50만여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이 한 농장에 모여 평화를 외치며 사흘 밤낮 꼬박 록의 제전을 벌였던 역사적 사건이다. 이름을 그렇게 붙인 것은 바닥과 객석 등 내부 기자재가 모두 나무로 돼 있기 때문인 까닭이 크다. 무엇보다 나의 우상 지미 헨드릭스가 미국 국가를 전자 기타의 디스토션음으로 모독한 현장이었다는 데서 동지애마저 느낀다.

당시 페스티벌 포스터 원문에 있던 '사흘(three days)'이란 표현을 감히 '나날'로 바꾸면서 나는 이곳에 그처럼 진정한 록, 록의 정신이 영원히 부활하길 진심으로 기원했다. 나의 전부를 걸었던 록 음악이 댄스 뮤직이나 발라드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 가는 데 대한 안타까운 현실에서 비롯된, 비장한 바람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영욕의 시간들을 버텨낸 지금, 이곳을 나의 무덤으로 삼자는 심정이다. 도대체 무엇이 남겠는가.

2002 한일월드컵의 놀라운 열기 속에는 윤도현 밴드 등 젊은 로커들의 활약이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보라, 언제 그랬냐는 듯 지금은 온통 랩 아니면 발라드 천지 아닌가. 내가 추구하는 진짜 음악(real music)은 가 버리고, 돈 벌기 위한 쇼 음악(show music) 천지다. 창립 이후 지난 1월까지 1∼2주에 한번 꼴로 펼쳐 온 '우드스탁'에서의 공연은 일체 무료였다.

이제 내 나이 예순 다섯이지만 정신은 소년이다. 기타를 메고 젊은 친구들과 갖는 무대를 여전히 즐기는데, 나의 전자 기타에서는 그들이 낼 수 없는 소리가 난다. 그 이유는 자연의 힘이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라 믿는다. 나는 그것을 도(道), 또는 나의 독특한 용어인 '내적 감각성'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나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 음악 세계의 본질을 파헤치는 이 말은 예전에는 해 본 적도 없고, 들어 본 적도 없다. 그러나 이렇게 말을 해 놓고 보니 힘이 나는 것 같다. 처음 한국일보사로부터 '나의 이력서' 제안을 받았을 때, 맨 먼저 든 생각은 과분하지나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사실 그동안 할 말은 많았지만, 말 주변이 없어 말은 적은 편이었다.

최근 들어 몇몇 크고 작은 매체에서 경쟁이라도 하듯 들어온 인터뷰 요청을 거절해 왔으나, 이제는 입을 열 때가 됐다고 본다. 이 자리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 기회를 빌어 저간에 있었던 크고 작은 오해를 풀고 싶다. 이젠 내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주자는 생각이다. 8군 록 밴드 드러머 출신인 아내 명정강(62)을 비롯, 나의 길을 이어 받고 있는 대철(35) 윤철(33) 석철(31) 등 세 아들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딸려 나올 것이다.

먼저 사회적으로 예기치 못한 주목을 받았던 이른바 '대마초 사건'과 그 이후 벌어졌던 착잡한 풍경들을 떠올리며 나의 예술과 인생에 대해 말하는 게 순서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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