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놈 봤능가. 꼬리 힘진 거 좀 보소. 1등감 아닝가."전남 진도군 의신면 초상리 백구(白狗) 보존마을. 박동량(65)씨의 2살배기 백구 자랑이 끝이 없다. 진도 사람이라면 이 상황에서 표정 관리가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안다. 만일 '아따 어르신…' 하면서 토를 달았다가는 '작대기 맞아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재바르게 탄성이라도 지르며 맞장구를 치면 '묵은지(묵은 김치)' 한 접시에 탁배기 한 사발이고, 운 좋으면 정주간에 감춰 둔 홍주 구경도 기대할 수 있다.
더욱이 의신면이다. 영화로도 제작된 '돌아온 백구'마을이 이 곳(돈지리)이고, 주인이 숨지자 10여 일을 굶으며 유품을 지키던 충견마을로 지난 해 매스컴을 탄 곳(옥대리)도 의신면이다. 20여개 황구·백구 보존마을이 지정된 진도 내에서도 둘째 가라면 서러운 진돗개 명문 마을. 주민들에게 진돗개는 출세한 아들 못지않은 자랑거리였고 '자존심'이었다.
그런 주민들에게 진돗개 품종 심사는 어쩌면 가혹하다. 생후 6개월이 지난 새끼는 무조건 진도군 부설 '진도개시험연구소'가 봄 가을 실시하는 심사를 받아야 하고 외모와 혈통, 품성 등 종합평점 60점(100점 만점)을 못받으면 도태 명령. 보름 이내에 개장수나 친지를 통해 진도 바깥으로 반출하거나 불임시술을 시키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게 된다. 반면 합격견에는 심사결과와 부위별 특징, 소유주 등 정보가 담긴 전자칩이 이식되고, 명실공히 '귀한 몸(천연기념물 53호)'으로 보호된다. 짝짓기서부터 출생, 매매 등 모든 과정이 관의 관리를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사일이 다가오면 마을에는 자녀의 대입시험 버금가는 긴장감이 감돌고, 주민들도 새끼 낳은 암컷 못지않게 예민해진다. 지금이 그 시기다.
"내 새끼가 심사에서 탈락하믄 억장이 무너지고 심사원 목줄이라도 흔들고 싶제. 하지만 워쩌것어. 혈통이 중요항께 심사는 받아야제." 진도 축협 관계자는 "안 좋은 개를 키우면 마을서 손가락질 받아서 못 산다"고 했다. "사람이 그 모냥이니께 개도 그런 놈을 키운다"는 인신공격서부터 "동네 망신시킨다"는 지청구까지 감당해야 한다. 주인이 당하는 왕따나 모욕은 그렇다 쳐도 발정기에 개의 짝을 찾아줄 수 없고, 당연히 '진돗개 농사'도 포기해야 한다. 합격견이 낳은 새끼는 '가문'과 강아지에 따라 약 30만∼100만원선(축협 판매가는 35만원). 한 배에 3∼5마리씩 낳고 연 2회 임신이 가능하니 쏠쏠한 농가 소득거리다. 주민들은 "똑똑헌 놈 한 마리가 논 한 마지기 소출보담 낫다"고 했다. 조모(57)씨는 "외지 것들이 진도에 진돗개가 없다고 궁시렁대는디 그건 무식헌 소리"라고 말했다. "어디 가서 어떤 놈하고 붙을 지 모르는데 풀어 놓것소. 재산인디 다 집에다 묶어놓고 키우지라." 진도군 집계 결과 군내 진돗개류 성견은 모두 1만4,839마리(2002년말), 칩이 이식된 것이 8,193마리다.
지산면 소포리에서 시범사육장을 운영하는 김길식(59)씨. 그는 자신이 키우는 35마리(성견) 모두 '작품'이라고 했다. "꼬랑지가 약으면(약하면) 꼬랑지 좋은 배필을 찾아서 진도 구석구석을 댕기지라." 그래서 새끼를 받아 좋은 놈을 골라 잡은 뒤 다시 짝짓기를 통해 결점을 보완하는 과정의 반복. 좋은 놈 하나 만들려면 4,5년은 잡아야 한다고 했다. "이 놈들을 폴아요(팔아요)? 억만 금을 줘도 안포요." 그런 우수견들이 진도군이 매년 여는 진돗개 품평회에 모인다. 대회가 다가오면 약 한 달 전부터 출전견은 특별관리에 들어간다. "소고기 육회에다 한 포대 4만∼5만원씩 하는 고급사료만 맥이요. 그라모 때깔부터 달라져 불죠." 대상을 받은 수컷은 교미 한 번에 50만원, 몸 값은 부르는 게 값이다. 한 주민은 "대상견 새끼는 마리당 200만원에 1∼2년치가 순식간에 예약된다"고 귀띔했다.
진도군은 지난 해 진돗개 5마리를 세계적인 개 등록기관인 영국 케널클럽에 보내 세계 명견 명부 등록준비를 시작했다. 케널클럽은 3대까지 혈통 및 품성을 검사한 뒤 내년 말께 최종 등록 여부를 확정할 예정. 군 관계자는 "진돗개가 등록되면 고가 수출도 가능해지고 개고기 먹는 나라라는 외국인들의 편협된 인식도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군은 2006년까지 160억원의 국·도비를 들여 5만평 규모의 진돗개공원도 조성할 계획이다. 본격적인 진돗개 소득사업을 벌여보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군과 연구소의 보존 시책이 저항을 받기도 한다. 품종 심사와 탈락견 도태를 두고 동물보호단체의 비난이 거세고, 우수혈통 보존과 농가 소득증대의 이해가 상충될 때도 있다. "칩이 이식된 개는 '대통령'에게도 팔 수 없지만, 외지인이 큰 돈으로 유혹하면 더러 넘어가지 않겠습니까. 반출한 뒤 실종신고를 하면 속수무책이죠." 진도대교(1984년 준공)가 선 뒤부터는 단속도 힘들어졌고, 99년 법(진돗개보호육성법) 개정으로 벌금형도 과태료로 완화했다. 강아지 유통경로도 난마처럼 얽혀 확실한 통계조차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1938년 조선총독부의 천연기념물 보호지정을 받은 진돗개는 일제의 모피 수탈과 해방, 한국전쟁 등 풍파를 겪었고, 해방후 관리기관 및 기준의 잦은 변경으로 수난을 당했다. 관리가 허술한 틈을 타 좋은 혈통이 외지로 많이 반출되기도 했다. 그래도 '진돗개는 진도'라고 했다. 혈통이 많이 개선된 것도 사실이다. 89년 칩 이식 첫 검사 당시 40%에 이르던 탈락률은 지난 해 15%대로 격감했다.
진도군 관계자는 "천연기념물 종 보존·관리 일이 재정자립도 10%대에 불과한 군 단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며 "그래도 이만큼 해낸 건 군민들의 진돗개 사랑과 자긍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진도=글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사진 홍인기기자
■심사위원장 김철환씨
"키워서 마음에 들면 모두 진돗개여." 진돗개를 키우는 외지인이 순종을 어떻게 식별하면 좋으냐고 묻자 진돗개 심사위원장 김철환(金哲煥·69·사진)씨는 그렇게 대답했다.
군에서 위촉한 임기 2년의 심사위원은 모두 10명. 30∼40년 이상 진돗개와 인연을 맺어 한 눈에 혈통을 감별해내는 이들이다. 이들의 판정이 개들의 신분을 판가름하는 만큼 그 권위가 막강하고, 경쟁률도 치열하다.
김 위원장은 "심사위원 한 번 하면 깡패가 된다"고 했다. 심사위원 2명이 한 조로 점수를 내고 얼굴을 걸고 하는 일인 만큼 안될 놈을 되도록 하지는 못하지만 개 주인 10명 모이면 기준도 10가지인 게 진돗개인 터. 자기 개를 탈락시키면 항의와 비난을 퍼붓기 일쑤이고, 맞대거리 하다 보면 누구나 '깡패'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일을 그는 60년대 관의 심사가 시작된 이후 줄곧 맡아왔다. "너무허요, 너무허요 케샀지만 워쩌것소. 우리가 독허게 해야 진돗개도 살고 진도도 살지 않겄소." 시험연구소 체제가 출범한 89년 이후부터 100점 만점에 최고점수를 받은 개가 88점이다. 그만큼 그들의 평가는 엄격하고 짜다.
"진돗개 관련협회가 전국에 수천 개고, 매년 열리는 품평회가 200여 회여. 다 자기네가 최고라고 해쌌지만 두고 보소. 진돗개는 단연 진도라는 걸 두고 보믄 알 것이요."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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