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조작(GM) 식품에 제동이 걸렸다.아프리카와 북한 등에 대한 식량 원조를 맡아온 토니 홀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미국 대사가 요즘 심기가 불편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유독성 음식을 먹느니 차라리 굶어 죽겠다"는 레비 음와나와사 잠비아 대통령의 말을 듣고 난감했다. 300만 명이 아사 위기에 처한 잠비아가 미국이 원조해 온 유전자 조작 옥수수를 거부한 것은 미국 정부에 상당한 충격을 안겨줬다.
GM 옥수수 '스타링크'의 종자를 만든 아벤티스와 어드밴타 USA 등 두 회사는 7일 스타링크가 알레르기를 유발한다는 논란으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옥수수 경작 농민들에게 1억1,000만 달러를 배상하는 데 합의했다. GM 식품에 대해 '프랑켄(프랑켄슈타인)식품(Frankenfood)'이라고 깎아내리는 시각도 확산되고 있다.
'기아 문제의 해결사'로 통하며 재배 면적을 넓혀온 GM 식품이 기로에 놓였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GM 식품 반대의 중심에 유럽연합(EU)이 있고, 여기에 중국과 인도도 가세할 태세이다.
미국과 EU의 분쟁 GM 식품 문제는 미국과 EU의 무역 분쟁에서 주요 현안이다.
이미 18개 GM 작물의 유통을 허용해 온 EU는 다양한 규제 조치를 만들어 1999년 이후 신규 GM 작물의 유통 승인과 수입을 사실상 금지하고 있다. EU 각료회의는 지난해 11월 유전자 조작 유기체(GMOs·Genetically Modified Organisms)를 0.9% 이상 함유한 식품에 대해 라벨을 붙이는 방안에 합의했다.
이에 로버트 죌릭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1월 "EU가 GM 식품에 대해 사실상 금지령을 내렸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EU를 불공정 무역 관행으로 제소할 계획임을 시사했다. 미국은 잠비아 등의 식량 원조 거부도 아프리카와 교역을 많이 하는 EU의 입김 때문이라며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EU는 "GM 식품 규제는 보호무역주의가 아니다"라고 일축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 파스칼 라미 무역 담당 위원은 "유럽 시민들은 음식물을 골라 먹을 권리가 있다"며 "미국이 WTO에 제소하는 것은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들 것"이라고 반박했다.
중국과 인도의 반대론 확산 세계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국민을 먹여 살려야 하는 중국은 세계 4위의 GM 작물 생산국으로 쌀, 밀, 감자, 콩, 면화 등의 GM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중국은 1980년대 말부터 GM 식품 연구에 매년 1억 달러 가량의 거액을 쏟아부으며 병충해에 내성이 강한 토마토와 단 고추를 개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봄부터 수입 GM 농산물에 대해 별도의 표시를 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중국으로 수출하는 농산물을 실은 배가 몇 주 동안 미국 항구에서 대기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세계 최대의 면화 생산국인 인도는 몇 개월간의 논쟁 끝에 지난 해 4월 GM면화의 상업적 재배를 허용했다. 하지만 면화 논란을 거치면서 인도에서는 옥수수를 비롯한 GM 식품에 대한 반발 움직임은 더 커졌다.
인도 정부가 지난해 11월 "외국의 원조 식량에는 GM 농작물이 없어야 한다"고 결정하자 구호단체들이 인도에 지원하려던 GM 식품을 다른 나라로 보냈다.
GM 식품의 앞날은? GM 작물은 당초 단위 면적당 수확량을 획기적으로 늘려 인류의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세주로 통했다. 또 병충해에 내성이 강한 종자를 개발함으로써 과다한 농약 살포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미국의 GM 작물 종자 제조 회사들은 "아직까지 GM 식품의 유해성이 밝혀진 적이 없고, 미국 시민들은 아무 탈 없이 이런 음식을 먹고 있다"고 GM 식품의 안전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잠복기간 20년'의 광우병을 몸서리치게 체험한 유럽인들은 "지금 당장 문제가 없더라도 몇 십년 후에 부작용이 나타날지 모른다"며 유해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그린피스등 환경단체들은 "GM 작물은 장기적으로 해충에 대한 내성을 키워 살충제 사용량을 오히려 늘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개발도상국들은 GM 작물 재배에 여전히 큰 관심을 갖고 있어 GM 식품의 운명이 비관적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GM 식품 반대론자들은 "GM 식품의 미래는 없다"고 몰아붙이고 있으나 찬성론자들은 "5∼10년 후에도 유해성이 확인되지 않는다면 GM 식품은 더 확산될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 GM식품은
유전자 조작(Genetically Modified·GM) 식품은 유전자 재조합 기술로 특정 유전물질을 변형시킨 생물체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말한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인위적으로 돌연변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GM 기술은 같은 종끼리 결합시켜 품종을 개량하는 육종법보다 한 차원 높은 것으로, 자연 상태에서는 교배가 불가능한 다른 종끼리의 유전자 교환도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1953년 DNA의 정체가 이중나선 구조라는 사실이 밝혀진 뒤 72년 미국 연구진은 바이러스와 대장균의 DNA를 연결한 최초의 DNA 조작에 성공했다.
최초의 GM 작물은 83년 미국 몬산토사가 개발한 '항생제에 내성이 있는 담배', 첫 상업적 GM 작물은 94년 미국 칼젠사가 만든 '무르지 않는 토마토'이다. 이 토마토는 94년 미 식품의약국(FDA)의 판매 승인을 얻어 시장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생산성이 높거나 제초제나 질병에 대한 저항성이 강한 GM 작물이 속속 등장해 현재 전 세계에서 15개 작물, 68개 품종이 생산되고 있다. 신품종 개발이 진행 중인 것도 수천 가지에 이른다. 옥수수, 콩, 쌀 등이 대표적인 GM 작물이며 GM 작물의 77% 가량은 제초제에 더 잘 견디도록 유전자를 조작했고 15%는 해충을 막는 물질을 스스로 만들어내도록 변형시켰다.
GM 작물의 최대 생산국은 미국이며 아르헨티나, 캐나다, 중국 등도 대량 생산국에 포함된다. 특히 중국은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해 최근 GM 작물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인체 유해성 논란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GM 작물 재배면적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2001년 전 세계 550만 농민이 5,260만㏊의 농지에서 GM 작물을 재배해 전년도 재배면적에 비해 15%가 증가했다. 이는 우리나라의 총 경지면적(2001년 기준 187만㏊)의 28배가 넘는 면적이다.
한국에도 이미 알게 모르게 상당한 정도의 GM 작물이 들어와 현재 수입 농산물의 약 10% 정도, 콩과 옥수수의 경우는 30% 가량이 GM 작물로 추정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2001년 7월부터 '유전자 재조합 식품 표시제'를 시행해 콩 된장 고추장 옥수수가루 등 27개 품목을 대상으로 제품 용기나 포장에 유전자 조작 식품임을 밝히도록 하고 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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