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트 하빈슨 세계무역기구(WTO)농업위 특별회의 의장이 12일 배포한 도하개발아젠다(DDA) 농산물 관세 및 보조금 감축에 대한 세부원칙 1차 초안은 '형식은 수입국 위주지만, 내용은 수출국 실리'를 살리고 있다. 이 초안에 근거해 향후 농업 협상이 진행될 경우 국내 농업 분야는 치명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수용 불가' 원칙을 천명하며 국가간 공조를 통한 감축안 축소 계획을 내놓고 있지만 초안 자체가 농산물 수입국 사이에서도 이해가 엇갈리도록 세분화 돼 있어 가능성은 매우 낮다. 특히 관세와 보조금 감축이 선진국, 특히 고관세 품목에 더 불리하게 돼 있어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지 못할 경우 국내 농업 정책의 일대 전환이 불가피할 전망이다.국내 농산물 큰 타격
세부원칙 초안 내용중 우리 정부에 가장 부담이 되는 부분은 농산물 관세 감축이다. 특히 관세율이 90% 이상인 고관세 품목에 대해 더 높은 감축률을 요구, 대부분 100% 이상의 고관세를 매기는 국내 주요 농산물의 피해가 불가피해졌다.
현재 국내 1,430여개의 대상 농산물 중 90% 이상의 고율관세를 적용하는 품목은 무려 141개에 달한다. 더구나 이 농산물들은 소비량이 많거나 국가 식량 안보상 필요한 핵심 품목들이 대부분이다. 만약 이 초안에 따라 45% 최소 감축률이 적용될 경우 보리(300%→165%), 옥수수(487%→180%), 참깨(630%→347%), 감자(304%→167%), 고구마(385%→212%) 등 주요 농산물들은 절반 가까이 관세를 낮춰야 한다. 이럴 경우 물밀듯이 몰려올 값싼 수입 농산물로 인해 국내 농가는 사실상 생산을 포기해야 할 처지다. 특히 품목별 최소 감축률을 45%로 높여 우루과이라운드(UR) 때와(15%) 달리 주요 농산물에 대한 신축적인 관세 감축이 불가능해 피해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정부 보조금 감축 부문에 있어서도 선진국 60%(5년간), 개도국 40%(10년간)라는 높은 감축률을 요구, 국내 농산물 개방의 최대 관심사인 쌀 정책의 변화가 불가피하게 됐다. 내년 기준 국내 보조금은 총 1조4,900원에 이르는 데 이중 90% 이상이 추곡수매에 투입된다. 그러나 현 초안에 따르면 정부가 가용할 수 있는 보조금 규모는 6,000억원으로 대폭 축소된다. 따라서 추곡 수매제도를 폐지하고 공공 비축제를 실시하는 등 농정 정책에 일대 전환이 예상된다.
향후 정부 대책 및 전망
내년말 완전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번 DDA 농업협상에서 우리 정부의 최대 목표는 쌀을 비롯한 핵심 농산물 개방폭과 시간을 최대한 연장하는 것이다. 현재 농업협상의 성패는 '쌀 관세화 유예'와 '개발도상국 지위 유지'에 달려 있다. 2004년에 재협상을 시작하는 쌀 관세화 협상은 국제 상황을 고려할 때 매우 힘겨울 전망이다. 현재 쌀 관세화 유예 혜택을 받는 국가는 한국과 필리핀에 불과하다. 정부가 이번 협상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도 쌀 관세화에 미리 대비하고자 측면이 강하다.
개도국 지위 유지도 넘기 힘든 산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농산물 분야에 있어서는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DDA 협상에서 개도국 지위 결정은 9월 각국이 품목별 이행 계획서를 제출할 때 다른 국가에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그대로 유지된다. 정부는 이를 위해 앞으로 협상 과정에서 미국 등 케언즈 그룹과의 일대일 접촉과 설득을 통해 개도국 지위 유지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갈 계획이다.
/송영웅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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