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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南-北 증오의 벽을 허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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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南-北 증오의 벽을 허물자

입력
2003.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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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에 의해 형성되는 교육과 사회 분위기가 얼마나 현실을 왜곡하고 적대적인 감정을 극대화하는지를 나는 남과 북에서 함께 체험하였다.남에서는 북을 적대화하기 위해 동족인 북한사람의 피부색도 빨갛게 표현했고, 북에서는 남한 지도자를 삽살개로 묘사하기도 하였다.

동족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이렇게 우리생활의 주위에서는 동족을 멸시하고 증오하는 교육과 선동이 매일 같이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남한사람을 직접 본 것이 1971년 말 남북조절위원회 회담이 있던 때였는데, 얼마나 세뇌교육이 되었던지 우리와 똑같이 생긴 남한사람을 보고도 설마 저 사람들이 남한사람들은 아니겠지 하고 스스로 반문하고 또 반문하던 그때의 일이 생생히 기억난다.

남과 북은 서로가 피터지게 싸웠던 가슴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 싸움은 한 개인의 지배욕과 남북의 이념갈등, 이틈을 타 외세가 개입하면서 일어난, 민족사에 다시 있어서는 안될, 천추에 한을 남긴 전쟁이었다.

더 큰 아픔은 그 후 수십년간 서로를 적대시하고 시기하고 질시하면서,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정쟁을 벌이는 것이 누구도 말릴 수 없는 당연한 풍토로 자리 잡히게 됐다는 것이다.

어릴 때 간혹 밥을 먹다 남기거나 흘리면 선생님이 "남조선 어린이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고 병들어 죽는데 남기면 되겠냐"고 꾸지람을 쳤던 것이 기억에 생생하다. 그런 말을 반복해 들으면서 나의 처지에 대한 그나마의 위로라고 할까, 아니면 행복이라고 할까, 아무튼 현실에 대한 불만이 사라지곤 했다.

서울에 오기 전에 제3국의 모 대학에서 같이 생활하던 일부 한국유학생들이 북한 사람들만 보면 피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북한 유학생들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언젠가 한 남한학생에게 물어 보았더니 "만나서 득될게 하나도 없다"는 의미심장한 답변이 돌아왔다.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아도 짐작은 갔지만 그 대답을 듣는 순간만큼은 허탈과 허무가 몰려오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내가 북에서 살면서 늘 하던 소리가 "미국과 남조선때문에 어렵게 산다" 는 것이었지만 언제 한번 내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의 정확한 근거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어디선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소리를 습관적으로 내뱉은 것이었다.

더 큰 문제는 근거없는 소리를 했다고 해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그것을 꾸짖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 사람이 책임을 지게 됐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환경이 불문율로 수십년간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체제가 '적'이라고 규정한 대상에 대해서는 그 어떤 짓도 해도 된다는 관행, 한발 더 나아가 그것이 최고의 애국인 듯이 여기고 이에 대해서는 그 어떤 의문이나 따짐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관행…, 사회가 국민에게 불문율을 만들어 준 셈이다. 이것이 하도 오래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점검되지 않고 우리 모두를 습관화시켰다.

그러나 우리만이 살다 끝나는 세상도 아니고, 우리 후대들도 그렇게 살게 할 수는 없는 만큼 이러한 무조건적인 증오는 바뀌어야 한다. 어찌 보면 이것이 최우선 일수도 있다. 이것만 해결되면 나머지 것들은 생각이 모자라서 미처 할 수 없는 것이지, 지금처럼 "눈치가 보여서", "누가 두려워서" 못하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아무쪼록 남북 국민이 서로 사랑하고 양보하고 도와주며 고무하는 그야말로 평범한 산골 이웃마을 사이가 되어 보았으면 한다. 그런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려면 북한도 남한에서의 변화노력에 적극 동참해 주어야 한다. 남북한 관계는 상대성이지 절대성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조 명 철 대외정책연구원 통일협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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