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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721>드레스덴 폭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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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721>드레스덴 폭격

입력
2003.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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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2월13일 나치스 독일 정부는 패전의 예감 속에서 잔뜩 풀이 죽어있던 120만 드레스덴 시민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시민 축제를 벌였다. 이미 짙어져 있던 패색을 하루의 축제가 말끔히 씻어낼 수 있다고 믿은 드레스덴 시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몇 시간 뒤 자신들이 개전 이래 가장 잔혹한 폭격의 희생자가 되리라는 것을 내다본 드레스덴 시민도 없었을 것이다.그 날 밤 10시15분, 영국 폭격기 244대가 드레스덴 상공에 나타나 공습을 시작했다. 공습이 계속된 세 시간 동안 무려 65만 개의 소이탄(燒夷彈)이 소나기처럼 드레스덴에 쏟아졌다. 750년 역사를 지닌 이 아름다운 도시는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다. 성 밸런타인데이였던 그 이튿날 밤, 이번에는 미군 폭격기 450대가 나타나 이미 화염에 쌓인 도시를 다시 폭격했다. 이틀간의 폭격으로 드레스덴은 말 그대로 초토화했고, 사망자 수는 13만5,000명이 넘었다.

독일의 패전은 그 이전에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태였던 터라, 연합국으로서는 이 대규모 민간인 살육이 전술적으로 꼭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쟁 기간 동안 독일군의 런던 공습에 치를 떨었던 영국 정부는 망설이는 미국을 설득해 이 대규모 보복전을 관철시켰다. 이 복수전은 영국으로서는 만족할 만했다. 드레스덴은 6개월 뒤의 히로시마(廣島)나 나가사키(長崎)처럼 원자폭탄의 투하를 겪지는 않았지만, 사망자 수나 폐허화의 정도에서 두 일본 도시를 넘어섰다. 드레스덴은 슬라브어로 '숲속의 사람'이라는 낭만적인 뜻을 지녔다고 한다. 종전 이후 동독 정부는 드레스덴의 유서 깊은 건축물들을 거의 다 복원해 다시 예전 같은 고풍(古風)의 도시로 만들었다.

고 종 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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