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사회의 모범적 여성상을 그린 최초의 책으로 꼽히는 중국의 '열녀전(列女傳)'을 여성주의 시각에서 비판한 '동아시아 여성의 기원'(이화여대 출판부 발행)이 출간됐다.이화여대 정재서 교수가 이끄는 이화중국여성문학연구회 회원들이 4년 여의 연구 끝에 내놓은 이 책은 열녀전의 남녀 불평등 사상뿐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의 여성 이미지 형성에 이 책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다루고 있다.
기원전 1세기 한(漢)대의 황실 후예인 유향(劉向)이 엮은 '열녀전'은 정절 등 6가지 따라야 할 여성의 모습과 보고 배워서는 안 될 악녀의 유형(얼폐전·孼嬖傳)을 제시한 책이다. 유향은 한나라 성제(成帝)의 총애를 받은 후궁 조비연(趙飛燕)의 방자한 행동을 보고 부녀자의 도리를 일깨운다는 뜻에서 이 책을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책에 실린 10편의 글 가운데 최진아(연세대 강사)씨가 쓴 '견고한 원전과 그 계보들'은 열녀전의 확대 재생산 과정을 다루고 있다.
유향의 '열녀전'은 후한서 진서 위서 구당서 신당서 등 정사(正史)에서 똑같이 '열녀전'이라는 이름으로 계승돼 남존여비의 유교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일조했다. 후한서의 '양황후기(梁皇后紀)'에는 황후가 좌우에 열녀의 그림을 두고 보며 본보기로 삼았다는 내용도 나온다.
중국 역대 '정사'의 여성 열전에 나타난 수절 열녀의 비율은 '후한서'에 17.7%였던 것이 '명사'로 가면 40%에 이른다. 특히 명·청대에는 유교 이데올로기의 복권이라는 목적 아래 열녀전이 널리 유포됐다. 한반도에서 열녀전에 입각해 최초로 여성을 유형화한 것은 '고려사'의 '열전(烈傳)'. 조선의 사가(史家)들은 한자까지 바꾸어(列에서 烈로) 가며 여성의 정절을 강조했다고 최씨는 지적했다.
책에는 이밖에도 고대 중국 신화에서 '열녀전'에 이르기까지 여성 이미지 변화를 살핀 '신화 속의 처녀에서 역사 속의 어머니로', '얼폐전'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를 금지하려는 봉건 사회의 음모를 읽어낸 '칼을 차고 장부의 마음을 품다' 등의 글이 실렸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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