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가 너무 묽은 것 같아요" "아이들이 콩은 골라내고 먹으니까 잡곡밥을 하더라도 조나 수수, 현미찹쌀 같은 걸 썼으면 좋겠어요" "나물이나 생선 종류가 좀 더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10일 서울 구로중학교의 급식 소위원회 회의. 한달 치 식단을 짜는 데 건의사항이 쏟아져 나온다. 이들 의견은 모두 취합되어 15일 가정통신문 형태로 각 학생에게 전달되며 다음 달 식단에 반영될 예정이다. 회의에 참석했던 학생회 부회장 김병태(15)군은 "아무래도 부모님들이 참여하시니까 좋아하는 돈까스나 햄버거 같은 걸 많이 못 먹는다"면서도 "그래도 옛날에 비하면 식판도 깨끗해지고, 반찬도 많아졌다"고 말한다.
'식판이 더러워 밥을 못 먹겠다.' 1년전 아이들은 식판에 매직으로 이런 문구를 써서 '항의 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만큼 상황은 참담했다. 세척이 덜 된 식판에는 고춧가루와 밥풀, 기름때 등이 묻어있기 일쑤였다. 뿐만 아니라 밥에 철수세미 가락이 들어있는가 하면 푸석푸석한 밥과 양념이 적어 들썩거리는 김치 등 맛없는 식단이 2주 단위로 반복되기도 했다.
아이들로부터 상황을 전해들은 학부모들은 모임을 만들어 상황개선에 나섰다. 학교운영위원회, 학년 대표 등 학부모 9명, 양호교사와 체육부장 등 교사 8명에 '아이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며 학생회 간부 등 학생 5명도 포함시켰다. 22명의 급식소위 위원들은 매달 둘째 주 금요일 회의를 통해 식단을 점검하고 식자재 검수 결과를 보고한다.
"처음에는 위탁업체와 갈등이 많았지요." 시민단체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상임대표이자 구로중 학교운영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배옥병(47)씨의 말이다. 업체로서도 학부모들이 일일이 아침 8시부터 채소의 신선도, 가공식품의 유통기한과 원료 등을 점검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먹거리를 부모가 챙기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며 참여의 당위성을 각인시켰고, 업체도 부모들의 건의사항을 점차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상황은 점점 좋아졌다. 애초 요구한 '식판청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재소독을 하기는 했지만 한 달 스무 번 중 절반이상 흰 쌀밥만 나오다 차츰 잡곡밥이 나오는 날이 많아졌다. 김치도 포기김치로 바뀌었고 잡스런 냄새가 나던 고기도 품질이 한결 좋아졌다. 현재 이 학교에서는 문제가 생기거나 건의사항이 있으면 위탁업체 관계자를 학교운영위원회에 출석시켜 시정을 요구한다.
급식은 아이들에게 교육적 효과도 컸다. 학부모회장 장영희(41)씨는 "처음에는 식단에 대해 제대로 불평조차 못하던 아이들이 지금은 스스럼없이 건의사항을 제안하는 것은 물론, 학생회 주도로 설문조사를 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배옥병씨는 "학교급식은 단순한 끼니 제공이나 도시락 해방의 의미가 아니라 교육으로서 인식되어야 한다"며 "급식개선운동은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는 운동이자 학교현장을 민주화하는 계기"라고 말했다.
/양은경기자 key@hk.co.kr
"급식小委"를 만들고 싶다면…
지난해 12월 관악·동작지역 학교영양사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급식 모니터링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고 답한 학부모가 전체 응답자의 60%가 넘었다. 시간상의 이유, '학교에서 알아서 잘 하겠거니' 혹은 '아이들이 쓸데없이 밥투정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 때문이다.
상황의 심각성을 듣고, 개선 의지를 가진 학부모도 참여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학교운영위 산하에 필요할 경우 급식소위를 두도록 되어 있지만 활동 범위나 권한이 명문화되어 있지 않아 중요한 결정사항은 학교 경영진이나 위탁업체가 좌지우지하는 학교도 적지 않다.
시민단체인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에서는 이러한 학부모들을 위해 '학교 급식소위 규정'을 내놓았다. 소위의 효과적인 조직과 운영 방법, 급식 식자재 검수 기준과 방법 등에 대해 상세한 지침을 담았다. 홈페이지(www.schoolbob.org) 자료실에서 찾을 수 있으며 전화(02-737-0957)상담도 가능하다.
/양은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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