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다케시씨는 12일 본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그 동안 정부 관계자들이 부인해온 2000년 3월의 남북 당국간 싱가포르 비밀협상이 사실이라고 확인했다.―2000년 3월17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박지원(朴智元) 당시 문화부장관과 조선 아태평화위원회 송호경 부위원장이 만나 협상을 시작했나.
"그 이전인 3월 초순 싱가포르에서 비밀 협상이 시작됐다. 내가 남북 정상회담의 아이디어를 북한에 제안했고 박 장관과 송 부위원장을 만나게 하는 '세팅'도 했다." (요시다 씨는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을 계속 장관으로 지칭했다)
―싱가포르의 비밀 협상 현장에 배석했나.
"배석은 안 했지만 주변에서 대기했다. 협상 시작 전 박 장관과 인사를 나눴다. 국정원 관계자로 보이는 박 장관의 비서를 통해 다음 일정과 장소를 연락했다."
―정몽헌(鄭夢憲) 당시 현대그룹 회장, 이익치(李益治) 현대증권 회장도 싱가포르 현지에 같이 있었나.
"현지에 있었다. 그러나 협상 현장에 배석하지는 않고 주변에서 대기했었다. 여러 호텔을 옮겨가며 협상이 이루어졌는데 정·이 회장은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나와 함께 커피숍 등에서 교섭이 잘 되기를 바라는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렸다. 정몽헌 회장과는 금강산 사업 문제로 이미 잘 아는 사이였다."
―그 뒤 상하이에서 박 장관과 송 부위원장이 접촉할 때도 두 사람이 있었나.
"언제, 어느 접촉 때인지는 정확치 않지만 둘중 한 사람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두 사람은 나와 마찬가지로 남북 정상회담 예비협상의 코디네이터였다. 예비협상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이 논의되는지는 당시 두 사람은 몰랐을 것이다. 상세한 협상내용은 접촉을 한 박 장관과 송 부위원장만이 안다."
―정상회담 예비협상과 현대의 대북사업 협상이 현지에서 동시에 진행된 것인가.
"아니다. 당시 금강산 사업은 잘 굴러가고 있었다. 정·이 회장은 나와 마찬가지로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현대의 대북사업에도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민간 사업가로서 협력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이 회장은 정상회담 성사와 남북관계 개선의 공로자다."
―당신이 현대의 거액 대북송금에 직접 관여했다는 주장도 있다.
"터무니 없는 거짓말이다. 개인적으로 일본과 중국, 베트남의 국교정상화를 보아도 북한 같은 나라와 정상회담을 하려면 어떤 형식이든 지원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북 송금 문제는 최근에 신문을 보고 알았다."
/도쿄=신윤석특파원
■ 요시다 누구
남북 막후협상의 중개역을 한 요시다 다케시씨는 조총련계 재일동포 2세로 북한과 일본의 무역중개업을 하는 신니혼산교(新日本産業)의 사장이다.
함경도 출신으로 일본에 귀화한 선친이 김일성(金日成) 주석과 절친했던 인연을 발판으로 대를 이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일본에서 '대북 채널'의 역할을 하고 있다. 1년중 절반 가량을 평양에서 보낼 정도로 북한 지도부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95년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당시 자민당 정조회장이 북한과 쌀 지원을 위한 비밀교섭을 벌일 때 비밀 창구로 지목돼 일본 정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일도 있다.
현대의 금강산 관광사업 추진과정에서도 그는 현대와 북한을 연결해주었다. 고 정주영(鄭周泳) 현대 명예회장과 김 국방위원장의 면담을 주선했으며 조선 아태평화위 송호경 부위원장, 강종훈 서기장, 황철 참사를 현대에 소개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과의 잦은 교류 탓에 그의 말에는 북한 억양이 배어 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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