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의 명칭이 '참여정부'로 결정되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 사회가 해방 이후 건국의 단계, 산업화의 단계, 절차적 민주화의 단계를 거쳐 이제 실질적 민주화의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새 정부의 명칭을 '참여정부'로 결정했다고 한다.노무현 정부가 참여정부를 표방한 것은 민주화 이후 등장한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승계하는 것인 동시에 앞의 두 정부를 한층 발전시킨 것이라는 점에서 크게 환영할만한 일이다. 김대중 정부는 5년 전 취임 당시 국민의 정부를 표방하고 "국민의 힘에 의존해서 개혁을 추진하고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정부가 참여정부를 지향하는 것은 김대중 정부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역사를 발전적으로 승계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참여정부라는 개념은 정치적 민주화와 개방의 관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승리는 민주당의 승리라기보다는 국민의 승리였으며, 폭넓은 국민참여가 일구어낸 소중한 결과였다. 민주당도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과거 정치가들은 국민들의 정치의식 수준이 낮다는 이유로 국민들을 폄하했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국민경선과 월드컵의 거리 응원, 촛불시위를 통해서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정치가나 행정가들보다 높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참여를 통해 요구를 실현했다. 지난 대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국민들은 수동적인 정치적 대상화의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당당한 정치의 주체로 거듭났다. 국민들은 피동적인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의 주체로 변모한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높은 의식 수준과 참여의 열망을 참여정부의 방식으로 수렴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과거 김대중 정부 초기의 구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게다가 구상만으로 참여정부가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점에서 두 가지 보완이 필요하다.
우선, 발상의 전환이라는 근본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참여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을 참여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낡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은 참여의 대상이 아니라 참여의 권리를 가진 당당한 주체이다.
국민은 대통령이나 정부의 시혜적 배려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권리에 따라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노무현 당선자는 링컨이 말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 중에서 주권재민의 정신을 함축한 '국민의 정치'라는 개념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당선자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부의 모든 사람들이 이 의미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참여의 확대와 더불어 참여의 제도화라는 기술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정부가 참여의 문호를 개방하고 제도화하면 지속적인 참여가 가능해진다. 제도화된 지속적인 참여만이 민주화와 개혁의 동력이 될 수 있다.
노무현 정부의 등장은 국민주권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서곡이다. 국민참여는 노무현정부의 등장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다. 그러나 세월은 '망각'이라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고 망각의 세월 앞에서 초발심은 빛을 바래기 쉽다. 문민정부가 그랬고 국민의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민주화와 개혁과 참여에 대한 첫 약속은 잊혀지고 권력에 대한 집착이 그 자리를 채울지도 모른다. 참여의 강도는 낮아지고 불편한 일에는 귀를 닫게 될지도 모른다. 새 정부가 국민의 지지를 받는 참여정부가 되고 성공한 정부가 되기 위해서 이 점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정 대 화 상지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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