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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대화문화의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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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대화문화의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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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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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대화의 장이다. 의회(parliament)의 어원이 프랑스어 '말하다'(parler)에 있다는 사실에서도 대화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의원들은 대화를 통해 현안에 대한 정책결정과 감시를 하고 사회의 관심을 환기시킨다. 미국 대통령을 지낸 우드로 윌슨은 입법이나 행정부에 대한 감시보다도 더 중요한 의회 기능은 의원들이 공개 대화를 통해 정보를 유권자에게 제공하고 건전한 여론을 이끄는 것이라고 했다.지난 1월 통과되어 그저께부터 적용된 개정 국회법은 대화 분위기 조성이라는 취지에서 고무적이다. 여러 제도개선안 중 특히 새로운 대정부 질문방식이 주목을 끈다. 그 동안 대정부 질문은 의원들의 일방적 연설, 근거없는 폭로성 주장이나 호통, 그리고 행정부측의 무성의한 동문서답식 답변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즉, 쌍방향 대화가 없었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개정 국회법은 대정부 질문에서 모두(冒頭)발언을 없애 일괄질의를 못하게 하고 장관과 의원간에 일문일답의 대화식 회의가 진행되도록 했다. 또한 의원들이 무책임한 발언을 하지 않도록 회의록 삭제 요구도 금지시켰다.

개정 국회법이 의도대로 효과를 거둔다면 국회가 정치발전을 주도해나갈 전기가 될 수 있다. 의원 및 행정부 고위관리가 보다 진지하게 준비하고 대화에 임하게 될 것이다. 정책의제 설정, 정책대안의 찬반 논의, 정책결과의 평가가 국회에서 이루어지며 국회가 정치의 중심 무대로 떠오를 수 있다. 물론 낙관은 금물이다. 과거에도 수많은 국회제도 개혁이 있었지만 성과를 거둔 경우가 별로 없다. 이번 역시 또 하나의 헛수고가 될 것이라고 미리 냉소할 만도 하다. 그래도 이번엔 기대를 걸고 싶다.

희망을 품는 이유는 객관적 실현가능성이 높아서가 아니다. 그 보다는 오늘날 사회상황에서 원내 대화의 중요성에 대한 당위적 요구가 크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대화는 날로 실종되고 있다.

나는 선이고 너는 악이라는 가치절대주의와 흑백논리가 팽배해 있다. 남의 의견을 경청하는 자세보다는 일방적 주장만 되풀이하는 모습이 지배적이다. TV 심야토론이 이런 세태를 잘 예시한다. 복잡한 사안을 다루는 만큼 다각도의 균형 잡힌 토의가 필요한데, 그와는 달리 양쪽으로 편을 갈라 외쳐대게 함으로써 이분법적 대립만 가열시킨다. 쌍방향 대화채널의 총아라는 인터넷에서도 사실 대화는 행방불명이다. 게시판은 일방적인 슬로건과 남에 대한 무조건의 비방으로 도배되어 있다.

이런 사회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국회 원내 대화에 실낱같은 기대라도 걸게 한다. 지금까지 흑백논리식 아집과 대립의 온상으로 낙인 찍혀온 국회가 개정 국회법을 계기로 토의문화를 가꿔나갈 수 있다면 사회 전체에 긍정적 여파를 미칠 것이다. 구미 학자들의 여러 연구에 의하면 의원들간의 진지하고 충실한 공개 토의는 국민에게 체제에 대한 신뢰감, 자기 이익이 도모되고 있다는 효능감, 민주적 선의(善意), 사회성원으로서의 책임감을 불어넣는다고 한다. 이런 시민적 덕목이야말로 날로 격앙되고 있는 이분법적 사회갈등의 해소 요인이 된다.

물론 원내 대화를 논쟁(argumentation)이 아닌 토의(deliberation)로 승화시키는 것이 쉬울 리 없다. 전자는 자기 입장을 고수한다는 전제에 서 있지만, 후자는 상대방 입장도 옳을 수 있다는 가정 하에 균형과 조화를 찾는 것인 만큼 너무 이상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개정 국회법을 통해 미진하나마 이상적 토의를 실천하는 첫 걸음을 내딛는다면, 그래서 국회가 사회 전반의 토의문화를 이끄는 주역으로 인정받는다면, 국회는 정치의 주변에서 중심으로 올라갈 수 있다. 그 현실적 가능성을 의원들이 인지해야 한다.

임 성 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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