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저녁 대통령직 인수위에 있던 기자들은 모두 '송경희' 이름 석자를 놓고 의아해하고 있었다. 노무현 당선자가 자신의 '입'인 청와대 대변인으로 내정한 사람이었지만 당선자 측근, 심지어 청와대에서 송 내정자의 상관이 될 인사조차 평소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던 생소한 인물이었다.저녁 8시30분께 기자들과 만난 송 내정자는 "대변인은 대통령의 철학과 생각을 가장 잘 전달해야 하는 자리"라고 스스로 임무를 규정지었다. 그러나 송 내정자가 "내가 정치를 가까이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대변인 역할에 더 충실할 수 있어 발탁된 것 같다"고 설명하면서 회견장의 분위기는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인선기준이나 발탁 배경이 모호했기 때문에 기자들은 "무임승차라는 지적이 있다","노 당선자를 만나본 적은 있느냐"는 등의 물음으로 검증을 시도했다. 이러자 송 내정자는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급기야 그를 감싸고 있던 인수위 관계자들은 "오늘 인터뷰는 끝"이라고 선언한 뒤 송 내정자를 밖으로 빼돌렸다. 기자들은 "인터뷰를 끝내고 가라","기자를 피하는 대변인도 있느냐"고 항의하며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나가 "당선자의 국정운영 철학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안에서 돌아온 답은 "당선자를 만나 본 적이 없으니 나중에 말하겠다"였다.
이날의 해프닝은 노 당선자의 '깜짝 인사'가 불러온 한편의 블랙코미디였다. 노 당선자가 인선기준으로 내세운 참신성, 개혁성에 반대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누구라도 수긍할 수 있을 정도의 객관성과 합리성을 갖춰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고, 대통령의 철학을 이제부터 공부해야 하는 사람이 대통령의 입으로 발탁되는 인사는 누가 봐도 부자연스럽다. '그 밥에 그 나물'식의 인사도 반갑지 않지만 '벼락맞은 느낌'을 주는 깜짝쇼에도 국민은 불안해 한다는 사실을 노 당선자는 직시해야 한다.
고주희 정치부 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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