귄터 그라스는 정치적 주제를 깊이 다뤄온 독일의 대표적 작가다. 199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전후 세대의 양심적 작가'라는 명예로운 호칭으로 불린다. 대표작 '양철북'은 세 살 때 성장이 멈춘 오스카가 주인공이다. 정치적 색채가 짙은 이 소설은 기발한 소재와 난해한 환상에도 불구하고, 진지한 도덕적 성찰을 담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베를린장벽이 개방된 지 한 달쯤 지난 1989년 말, 그는 함부르크역에서 한 젊은이로부터 "조국의 배반자!"라는 욕을 들었다. 차가운 분노에 가득 찬 그 젊은이는 "이제 너 같은 것은 청소해 버릴 때가 되었다"고 외쳤다.
<사정은 이러하다. 나는 두 국가에서 한 국가로 단순화한 독일을 두려워하고 있을 뿐 아니라, 통일국가를 거부한다. 그리고 독일의 통찰에 의해서든지 이웃 국가의 이의에 의해서든지, 통일국가가 생겨나지 않으면 다행이겠다.>사정은>
그라스는 반(反) 독일통일론자였다. 통일국가보다는 국가연합제를 지지했다. 기고문이나 연설, 인터뷰 등을 통해 반통일을 호소해 왔다. 근거는 이러하다. 통일이 되면 인구 8,000만명이 되어 독일은 강력해지고, 나지막이 말하려 해도 큰소리를 내게 된다. 다시 한번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상징되는 공포의 대상이 되고, 또 고립될 것이다. 과중한 통일국가보다는 문화국가로서 국가연합제가 바람직하다.
같은 분단국 국민으로서 "배반자!"라고 외친 열혈 청년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라스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인다. 그에게는 두 차례나 세계를 비극으로 몰아넣은 독일인으로서 '가해자 의식'이 있었다. 때문에 독일이 통일되기보다는 국가연합 상태로 존속되기를 바랐다. 그는 국민적 통일주장 속에 외롭게 반통일의 깃발을 들었고, 다수의 희망에 반하는 주장을 당당하게 펼쳤다. 숨어서, 우회적으로 말하지 않고 지식인답게 명료한 주장을 펴 온 사실만으로도 그는 존경을 받을 만하다. 그러나 그라스의 빛나는 지성과 양식도 통일의 열광 속에 묻혀 버렸다.
독일 지식인의 가해자 의식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피해자 의식'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우리는 남을 침략한 적도 없이 숱한 고난을 겪어온 용렬한 민족이다. 지금도 분단으로 인해 국가가 정상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독일과 한국은 처지가 반대다. 때문에 우리를 짓누르는 고통과 피해의식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찾고자 하는 답은 그라스가 아니라, 그에게 욕을 퍼부은 열혈 청년이 된다.
서독 정부가 통일을 위해 동독에 지원한 돈은 62조4,000억원이다. 불이익을 기꺼이 감수하며 교역한 것까지 합치면 100조원이 넘는다. 이에 비해 지금까지 우리 정부의 대북지원 규모는 모두 4,800억원 수준이다. 여기에 현대상선의 2,235억원 대북 송금을 놓고 나라 전체가 들끓고 있다.
투명하지 않다느니, 특검제를 도입해야 한다느니 하는 논쟁으로 날이 저물고 밝는다. 기다렸다는 듯이 언론도 야단이다. 정부나 정치에 대한 불신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렇게 당리적이고 공개적인 논란이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에게 걸맞은 사려깊은 행동인가.
지난해 그라스의 말을 떠올려 본다. 그는 한국의 통일에는 긍정적 태도를 보였고, 통일을 위해 남한이 세금을 올려 그 돈으로 북한을 지원하는 것이 좋겠다고도 권했다. "도덕적 차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한을 지원한다면, 그 효과는 무조건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역사의 승리자로서 남한은 북한에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통일을 원한다면, 역설적이지만 독일의 반통일론자에게서 통일의 지혜와 진정성을 배워야 한다. 중요한 것은 돈보다 합리적인 정신과 이상(理想)이다. 돈이 있어도 이상이 없는 민족은 빈곤하다.
박 래 부 논설위원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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