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 중 하나인 무디스가 북한 핵 위기에 따른 안보환경의 악화를 이유로 우리나라 신용등급 전망을 두 단계나 전격 하향 조정함으로써 국내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이번 조치는 특히 내수침체와 주가하락 등 으로 국내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확산되는 와중에 나온 것이어서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부정적' 신용등급 전망은 신용등급을 내리기 직전의 단계여서 4월 무디스 재평가에서 신용등급이 한단계 하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신용등급 하락의 파장
신용등급 하락은 대외적인 국가 신인도 악화로 경제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지만 당장은 국내 금융기관 및 기업들의 외화 차입 및 기존 외채 상환 부담을 가중시킨다. 실제로 무디스의 발표가 있은 직후 해외시장에서 한국 채권은 가산금리가 오르고 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무디스의 발표 이후 홍콩과 싱가포르시장에서 2008년 만기 외평채의 가산금리가 0.07% 정도 오른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외환보유고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1월말 현재 우리나라의 대외채무는 1,305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 1,180억 달러에 비해 10.5% 늘었고, 1년 내에 상환해야 하는 단기외채 비중이 39.8%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외환 전문가들은 "국가 신용도 저하로 원화 가치가 급락할 경우 추가 차입이 어려워질 뿐 아니라 단기외채 상환에 따른 부담도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도 "당장 차입금리 상승으로 10억 달러의 추가 부담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무디스의 갑작스러운 신용 등급 조정으로 경쟁관계에 있는 나머지 국제신용평가 기관의 하향 조정도 잇따를 전망이다. 일단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 P)는 이날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당분간 현행대로 유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북한 핵 위기에서 비롯된 지정학적 위험에 대해 결코 잊지 않고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영국의 신용평가기관 피치도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북핵 위기에 따른 긴장이 현저하게 확산된다면 기존 견해를 수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등급하락 가능성
전문가들은 북핵 문제가 조기에 해결되지 않을 경우 3, 4월께 우리나라의 신용등급 전망치는 물론, 신용등급 자체가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외 투자자들이 한반도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이 내국인보다 훨씬 심각한데도 정부가 너무 안이하게 대응해왔다며, 대내외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주문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지금의 경제위기가 이라크전쟁과 북핵 문제 등 '외생 변수'에 의한 것인 만큼 마땅한 대책을 마련하기가 어렵다며 손을 놓아 왔다.
삼성경제연구소 최희갑 수석연구원은 "이라크전쟁의 경우 불확실성이 걷힐 시기가 다가오고 있지만, 북핵 문제는 하반기까지 이어지면서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며 "사전에 철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 무디스 갑작스런 번복 왜
무디스가 신용등급 전망 유지 방침을 갑자기 번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달 20, 21일 이틀간 방한 조사를 벌였던 무디스는 당초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4월까지 '긍정적'으로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전하고 돌아갔지만, 보름 만에 정반대의 결과를 통보해 왔다. 이에 대해 권태신(權泰信) 재경부 국제금융국장은 "무디스 평가단이 반미시위와 신정부의 경제정책, 북핵 문제 등에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돌아간 것은 분명하다"면서 "8명이 참여하는 신용등급평가위원회에서 갑자기 방침이 바뀐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평가단을 이끌었던 토머스 번 국장 등 3명이 위원회에 참석하는 만큼, 이런 해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해외 투자자들이 북핵 문제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이 국내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무디스는 발표문에서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반도의 불확실성'을 등급 전망 조정의 주된 이유로 꼽았다.
협상에 참여했던 재경부 실무자도 "무디스가 반미 시위를 직접 확인해본 뒤 심각한 수준이 아닌 것으로 판단했지만, 북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지에 대해선 여전히 우려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무디스 관계자들의 말은 '외교적 언사'에 불과한데도, 정부 관계자들이 너무 안이하게 등급 전망이 유지될 것이라는 낙관론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정부는 이날 오전 11시 무디스의 전화통보가 올 때까지도 신용등급평가위가 열린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무디스가 발표문에서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새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급속한 내수위축과 기업의 설비투자 부진, 환율 불안 등 어두운 경기상황도 등급 전망을 낮추는 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선 미국 정부의 음모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부시 행정부가 북핵 해결을 둘러싸고 의견차를 보이고 있는 노무현(盧武鉉) 신정부를 길들이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고재학기자
■ 국가신용등급
국가신용등급이란 특정 국가가 대내외에 발행한 국채를 갚을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평가한 것이다. 자국 통화 국채는 정부가 발권력으로 갚을 수 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외국 통화 국채에 대한 상환능력을 평가한다. 무디스, S&P가 발표하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도 대한민국 정부가 발행한 외화표시 국채의 신용등급이다.
S&P와 무디스는 세계 각국을 17∼18단계로 평가하는데, AAA(무디스는 Aaa)부터 BBB-(Baa3)까지는 투자등급, BB+(Ba1) 이하는 정상적으로는 투자가 불가능한 투기등급으로 분류된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직후 투기등급으로 추락, 해외차입 금리가 급등하는 등 고통을 겪었으나 99년 투자등급을 회복하고 이후 신용등급이 A등급까지 속등하면서 차입금리가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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