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사람들은 박찬옥 감독의 '질투는 나의 힘'을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과 자주 혼동했다. 심지어 지난해 부산영화제 개막 직전 관계자는 "박찬욱 감독 이름에 오자가 났다"며 걱정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박찬옥(35)이라는 이름은 스스로 빛을 낸다. 부산국제 영화제에서 뉴커런츠 부문의 아시아 신인 작가상을 수상하며 '부산 영화제 최고의 수확'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2일 폐막한 로테르담 영화제의 유일한 상인 타이거상까지 수상했다."학교(한양대 연극영화과) 다닐 때 단편을 만들었다가 반응이 안 좋았을 때가 마음이 편했다. '내 영화 재미있는데'하고 생각하면 되니까. 그러나 이제는 불안하다. 마치 한 순간 모든 게 들통날 것 같은 불안감이 있다. 사람들의 말을 너무 믿기도, 안 믿기도 모두 그렇다."
'질투는 나의 힘'은 문학지 편집장(문성근)에게 두 번이나 여자를 빼앗긴 대학원생 원상(박해일)의 이야기. 원상은 아예 문학지에 취직, 편집장의 '시다바리' 역할을 자처하며 그의 곁을 맴돈다. 청년은 남자를 질투하며, 흠모한다. 기형도의 시 '질투는 나의 힘'에서 제목을 따온 영화는 상투적 멜로 드라마를 뛰어 넘어 심도 깊게 인간 관계를 조망한다.
"나의 청년기가 끝나는 시점에, 욕망으로 평화롭지 못한 청년기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버지와 아들, 스승과 제자, 심지어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도 갈등이 존재한다. 상대방에게 저항하고 싶고 미워하면서도 그에게 인정 받고 싶은,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존재의 강박."
삼각관계, 연상의 여인, 질투 같은 자극적 소재에도 불구, 박찬옥의 영화는 느리다. 대신 사람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잡아내는 촉수가 특별히 발달했다.
"사람들의 관계는 겉으로 드러난 것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다. 멜로 드라마를 통해 사람 관계의 이면을 드러냈던 파스빈더, 관계의 균열을 정면으로 해부한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처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관계 속에 내재된 힘의 역학, 힘의 정치학쯤으로 해석될 법하다.
감독 박찬옥을 벌써부터 홍상수 감독에 빗대는 소리도 들린다. 그가 '오! 수정'의 조감독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더라도 그의 영화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는 홍상수적, 아니라면 작가주의적이다. 장편 데뷔작으로 벌써부터 '작가주의' 반열에 들었다?
"당연히 싫다. 나는 재미있는 영화 만들고 싶다." 의외의 반응이다. "작가주의를 표방한다고 말하는 진짜 작가주의 감독은 없을 것"이라는 그는 "작가주의 영화 스타일을 따라가는 것은 결코 영화가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무늬만 작가주의'는 사양하겠다는 뜻일 게다.
대신 그는 극장에서 관객과 만날 날(4월25일)을 기다리고 있다. "멋모른 채 지난해 개봉했으면, 정신없이 그냥 지나갔을 텐데. 이제는 포스터만 봐도 얼굴이 후끈거린다."
인터뷰를 앞두고 전날 잠을 설쳤을 정도로 신경이 예민한 감독에게 개봉이 미뤄져 영화에 대한 기대감만 점점 커지는 상황은 부담스럽다. 언뜻 느껴지는 박찬옥은 파스빈더의 영화 제목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때로 단호하고 명쾌한 말투는 그가 이제 막 청년기를 지나온 주목할만한 신인임을 다시 상기시킨다. 하긴 그는 이제 막 시작했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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