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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 대전 "행정수도" 소문… 아파트값 폭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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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 대전 "행정수도" 소문… 아파트값 폭등

입력
2003.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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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가 대전을 방문한 5일, 중소기업체 직원 유승기(38)씨는 대전 유성구 노은지구 자택에서 가족들과 짐을 싸고 있었다. 전세금 5,500만원에 2년간 살아온 31평 짜리 아파트를 떠나는 날이었다. 유씨 가족은 인근 반지하 빌라에 새 보금자리를 틀었다. "외지에 사는 집주인이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전세값을 2,000만원이나 올려 달라고 연락이 왔더군요. 겨우 돈을 마련했더니 1,000만원을 더 올려달라고 다시 연락이 왔어요." "다른 동네로 뜰까도 생각해봤지만 아이 학교문제 때문에 포기했다"는 유씨는 "남의 일 같던 행정수도 이전이 이런 식으로 내 일이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쓰게 웃었다.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아파트값

'유령'이 떠돌고 있다고 했다. '전염병'혹은 '메뚜기떼' 라고도 표현했다. '행정수도 이전'이 몰고 온 '부동산 폭등'후폭풍은 "부동산에서 만큼은 조용하던" 대전을 전례없이 들쑤셔 놓고 있었다.

호남고속도로 유성IC를 나와 10여분을 달려 갑천대교를 넘어서면 빽빽한 아파트 촌과 맞닥뜨린다. 대전 서구 둔산지구다. 정부대전청사와 대전 시청 따위 관공서를 둔산동 월평동 삼천동 5만여 가구 아파트 단지가 둘러싸고 있다.

"왜 하루하루 눈을 비비고 본다잖소.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마자 여기 아파트 값이 그랬다니까."둔산동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이모(52)씨는 10년간 부동산을 해왔지만 자신도 적잖이 놀랐다고 했다. "요즘 대전 사람들은 입만 열면 '행정수도'고 '어디가 얼마 올랐다'는 얘기뿐입니다."이날도 노 당선자의 대전 방문 뉴스를 찾아 읽어 봐야 한다며 인터넷을 뒤적이던 이씨는 "그런데 수도가 진짜 오기는 오는 거요"라며 눈을 껌뻑였다.

주민들은 편의시설과 함께 학군을 이곳의 최대 강점으로 꼽았다. 금성백조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40대 주민은 "교통, 편의시설 잘 돼 있지. 좋은 학교에 좋은 학원들 많지. 오를 만하죠"라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런 둔산 지구에 '행정수도 이전 공약'은 기름을 들이 부은 격이었다. 대선 다음날부터 연일 호가를 갈아치우기 시작하더니 30평형 규모 중형 아파트 한 채가 3,000만원이나 뛰었다고 했다.

서울 졸부들 재테크장 전락

주민들의 반응은 엇갈리면서도 일치했다. "그 동안 이곳 부동산이 저평가돼 있어 오를 만도 하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그래도 너무 심하다"고 했다. 그것은 아파트 소유자와 세입자간의 차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서민들은 이 소동이 피곤하기만 하다"고 했고 대선 이후 나타난 '서울번호판을 단 차량'을 성토하는 데서는 목소리 높이기를 함께했다.

둔산동 샘머리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50대 주민은 "아파트값이 올라서 좋으냐"는 기자의 질문을 달갑잖게 받았다. "살고 있는 사람이야 무슨 영향이 있소. 여기 오르면 다른 아파트도 다 오르는데. 괜히 싱숭생숭하기만 하고 분위기만 흉흉하지."

월평동 누리 아파트에 산다는 이병열(45)씨는 좀 더 과격한 표현을 썼다. "서울 졸부들 재테크장이나 됐지 뭐. 호가만 잔뜩 오르고 거래도 안 된다는데, 오히려 더 불편해."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김모(36·여)씨는 "작년에 서울 강남 아파트값이 치솟을 때 반상회 담합 얘기를 뉴스로 들었는데 지금 여기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오르는 게 싫지는 않지만 동네가 이상하게 변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아파트 값의 급등은 이사철인 2월을 조용하게 만들어놓았다고 했다. "아파트값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으면서 매물도 안 나오고 매수자도 없어서" 그렇단다. 그래서 이맘때면 바빴을 이삿짐 센터는 "전세금 올려줄 돈이 없어 빌라로, 다세대주택으로 옮겨가는 세입자들의 이삿짐이나 옮기고 있다"고 했다.

대선을 전후해서는 아파트를 팔려다 내놓은 사람들도 일제히 매물을 거둬들이는 바람에 매도·매수자간 분쟁도 심심찮았다고 한다. 월평동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계약까지 했다가 위약금을 내고 무르는 경우가 허다했고 매수·매도자간에 소송 직전까지 간 경우도 봤다"고 했다."대전이 그래도 집값이 싸서 살기는 좋았는데 조만간 서울 꼴 날 것 같아요."대전 토박이라는 김영주(45)씨의 얘기다.

밀려난 세입자 "왜 2번 찍었나"

대전월드컵 경기장 뒤로 펼쳐진 유성구 노은1지구는 2000년 초 본격적인 입주가 시작된 신시가지다. 둔산지구에서 차로 10분 거리지만 새로 지어올린 아파트 단지를 상큼한 공기와 산책로로 적당한 매봉산 자락이 에워싸고 있다.

"지금이야 연일 호가를 경신, 둔산지구에 맞먹지만 2000년 초 첫 분양 때만 해도 미분양이 속출했다"고 초입 부동산의 업주는 전했다. 세입자를 구하기도 힘들어 31평 아파트 전세가가 4,000만∼5,000만원이었단다.

그런 곳에서 올 들어 전세금이 두 배 이상 뛰어버렸고 세입자들은 황당함을 넘어서는 그 무엇을 느꼈을 터였다. 오른 전세금을 감당할 수 없어 월세로 전환했다는 한모씨는 "속보인다고 하겠지만 '왜 2번 찍었나'는 후회가 안 들면 거짓말"이라고 했다.

노은1지구에서 공주 연기 방면으로 향하면 황무지처럼 펼쳐진 노은2지구가 있다. 곳곳에 세워진 타워 크레인과 먼지를 풀풀 날리며 질주하는 덤프트럭, 건설 회사들이 세워놓은 입간판이 조만간 이 곳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설 곳임을 알게 했다. 5일 부터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돼 분양권 거래가 제한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변 부동산 업주는 코웃음부터 쳤다. "늦었어요. 벌써 다 해먹고 갔는데 지금 하면 뭐해요." 대선 전후로 '서울번호판 차량'이 몰려와 메뚜기떼 처럼 휩쓸고 갔다고 했다.

인근의 또 다른 부동산 업주는 "정부가 투기대책이랍시고 이것 저것 내놓지만 투기꾼들이야 다 빠져나가면서 해먹는 것 아니겠습니까"라며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흘렸다. 부동산을 나서려는데 업주가 훈수했다. "관저동에 가보세요. 최근 하루 밤새 3,000만원이나 올랐다던데요."

'구도심' 주민은 "소외" 분통

호남고속도로 서대전 IC를 빠져 나오면 대전의 서남부에 해당하는 서구 관저동 일대다. 90년대 후반부터 새 아파트들이 자리했다지만 아직 시내 중심지에 비하면 편의시설은 듬성듬성하고 변두리라는 인상이 짙다. "그저 공주니 논산 따위에 근무처를 둔 이들이 교통 편리때문에 모여 사는 조용한 지역"이라고 주민들은 말했다.

하지만 최근 "행정수도가 대전 서남부 지역에 들어선다"는 모 인사의 취중사견(醉中私見)이 언론을 대대적으로 탄 직후 이곳은 둔산·노은지구에 이어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이 곳 사람들은 "하루 새 3,000만원, 그거 헛소문이에요"라며 단호히 손사래부터 쳤지만 말끝에는 아파트, 땅값이 서서히 요동치는 기미가 느껴진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역시 매물이 안 나오고 이사철 임에도 불구하고 부동산은 파리를 날린다고 했다. 이곳에서도 '서울번호판을 단 차량' 소문은 무성했다. 인근 용계동과 가수원동의 땅값이 들썩대고, 땅주인들은 벌써부터 토지 수용을 걱정한다는 소문도 나돈다.

"아직 어디 들어설지도 모르는데 이러니 앞으로 10년이 걱정이네요. 서울 서민들 봐요. 수도권으로 다 쫓겨갔잖아요. 대전 서민들도 이제 공주니 논산이니 외곽으로 나가 살 날이 멀지 않았어요."관저2지구 구봉마을 조모(41)씨의 얘기다.

대전시내를 가르는 유등천을 넘어 동쪽으로 향했다. 대전 중구, 동구다. 이곳 사람들은 '신도심' 둔산지구와 노은지구와 비교해 자신들이 사는 곳을 '구도심'이라고 다소 자조 섞어 부르는데 익숙했다.

행정수도 이전 효과는 아직 유등천을 넘어오지 못했다고 했다. 이곳 사람들은 이곳 사람들대로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동구 자양동 D아파트 앞에서 만난 한 시민은 버럭 화부터 냈다. "아파트값 오른 곳은 따로 있는데 왜 이곳까지 투기지역으로 지정한다고 난리를 피웁니까. 올라봐야 100만원,200만원이고 내린 곳도 수두룩한데, 와보고 무슨 얘기를 해야할 것 아닙니까."

동구 삼성동에서 만난 한 주민도 "신도심은 아파트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구도심은 제자리걸음이라 조만간 서울의 강·남북 처럼 확연하게 지역 격차가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곳 사람들은 자신들을 행정수도 이전 소동의 또 다른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누구 하나 득 봤다는 이가 없다. 피해자만 수두룩했다. 대전을 휘휘 감아 아파트 값을 잔뜩 올려놓은 '돈'은 어디 선가 왔다가 어디론가 사라진 게 분명해 보였다.

/대전=글 이동훈기자 dhlee@hk.co.kr 사진 류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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