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실패 같다. 45억원 짜리 영화에 관객 100만 명을 겨우 넘겼다. "이제는 재미있겠지, 이제는 재미있겠지"하고 기대하다가 그대로 끝나버려 실망했다는 어느 관객의 말이 정곡을 찌른다. 주제가 심각하다거나, 분위기가 무거워서도 아니다. 결국은 영화 '이중간첩' 전체의 완성도가 문제이다.온갖 이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허술한 시나리오, 상대 여배우, 한 색깔로 일관한 한석규의 연기 등등. 이유가 무엇이든 한석규의 4년 만의 컴백은 이렇게 끝나고 있다. '닥터 봉'으로 시작해 '텔미 썸딩'까지 내리 8연승을 거둔 1990년대 한국 최고의 배우, 실패가 두려워 장고를 거듭하면서 오해도 많이 받았던 최고 출연료 배우에게 이번 첫 실패는 약이 될 수도, 치명적 병이 될 수도 있다.
선배 안성기씨는 "차라리 잘 됐다"고 말한다. 한석규가 워낙 단단하고 자기 일에 충실한 배우이기 때문에 이번 실패가 분명히 '약'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몇 가지 충고를 한다.
먼저 자유로워지라는 것. 그는 "좋은 의미에서 한석규의 실패를 오래 전부터 기대했다. 빨리 흥행부담을 떨어내야만 작품 선정의 경직성도 적어지고, 연기에 부담도 없고, 대인관계도 편안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한석규의 흥행부담을 '이중간첩'에서 분명히 보았다. 어느 때보다 악물고 열심히 했지만, 그럴수록 힘들어 보이고 감칠맛이 적어진 연기. "그것을 남의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100% 흥행에 성공할 완벽한 시나리오는 10년을 기다려도 없다. 가능성과 만나는 사람들과의 호흡이 중요하다. 그건 너그럽고 자유로운 자만이 가질 수 있다."
그렇다고 성급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초조한 나머지 빨리, 혼자 힘으로 이번 실패를 만회하려다 도리어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빠진다면 한석규답지 않다. 덤덤하고 느긋해야 좋은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작품만 좋고 인물만 매력 있다면 비중이 다소 약하더라도, 좋은 후배가 앞에 서더라도 기꺼이 함께 출연하기를 권했다. 남의 일이라서 쉽게 하는 말이 아니다. 3,4년 전 그 자신도 그랬다. '인정 사정 볼 것 없다'에서 감독이 갑자기 범인 역을 하라고 했을 때 '충격'을 받았지만,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제2의 배우 인생'을 멋지게 열었다. 다른 사람 이야기라면 몰라도 안성기씨의 충고에는 한석규가 귀 기울여 봄직하다. 그가 누구인가. 바로 10년 전 한석규이고, 누구보다 후배와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선배가 아닌가.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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