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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수형번호

입력
2003.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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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뮤지컬 중 하나로 꼽히는 '레미제라블'은 1985년 런던에서 초연된 이래 세계 음악팬들의 심금을 울려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1996년 예술의 전당에서 초연됐고, 지난해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두번째로 올려졌다. 최근엔 이 뮤지컬의 남녀 주인공 3명이 출연하는 콘서트가 예술의 전당에서 열려 많은 관객을 불러 모았다.■ 계층과 국가를 넘어 폭넓은 감동을 유발하는 '레미제라블'의 두 주역은 장발장과 자베르 경감이다. 이들의 대결구도와 극적인 결말이 인상적인 음악과 함께 펼쳐진다. 시작부터 두 사람은 대립한다. 빵을 훔치다 들켜 19년간 옥살이를 한 장발장에게 가석방 사실을 알려 주면서, 자베르는 "너는 도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경고한다. 장발장은 자신의 이름이 장발장이라고 주장하지만, 자베르는 끝까지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 그에게 장발장은 24601번일 뿐이다. 법과 정의의 화신인 자베르는 그 24601번을 죽을 때까지 추적한다.

■ 죄인들에게는 수형번호가 곧 이름이다. 군대에 갔다온 사람들이 평생 군번을 기억하듯이 옥살이를 한 사람들은 수형번호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본명이 원록(源祿)인 '광야'의 시인 이육사(李陸史)가 대구형무소의 수형번호 64(일설에는 264)를 따서 아호를 지은 사례는 유명하다. 대통령을 역임한 전두환씨와 노태우씨도 각각 3124와 1042라는 숫자를 재임 당시의 국정지표보다 더 잘 기억할 것이다. 3370과 1199라는 숫자에는 권노갑씨와 강경식씨가 신경질적 반응을 보일 것이며, 탈옥범 신창원은 105라는 숫자에 이가 갈릴 것이다.

■ 유치환의 시에는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목숨보다 더 귀하고 높은 것'이라는 구절이 있지만, 사람을 이름 대신 번호로 부르는 것은 인간 대접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아들을 못 본 조선시대의 한 선비는 딸들의 이름에 계속 숫자를 넣다가 다섯번째도 또 딸이자 뭣에 쓰겠느냐는 뜻에서 오하(五何)라고 불렀다고 한다. 2005년에 국내 처음 문을 여는 민영교도소에는 푸른색 수의와 쇠창살이 없으며, 수형번호 대신 이름을 부를 계획이라고 한다. 기독교재단이 운영하는 아가페교도소의 수형자들은 '목숨보다 더 귀한' 이름을 보전하게 됐다.

/임철순 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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