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중소 제조업체들이 경기침체와 인력난에다 유가인상까지 겹쳐 3중고를 겪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만성적인 자금난속에서도 경기회복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 왔지만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 임박한데다, 국제유가마저 급등하면서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끝을 모르는 경기침체
우리경제는 북한 핵사태, 중동전운 고조 등 외부 악재와 소비심리 위축 등 내부 불안요인이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침체국면에 들어선 가운데 중소기업들의 체감경기는 훨씬 쌀쌀한 편이다. 서울 영등포에서 종업원 5명 규모의 기계공업소를 운영하는 김용득(54)씨는 "지난해 초와 비교해 일감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올들어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라고 울상을 지었다.
각종 중기관련 조사결과도 이를 실감케 하고 있다. 지난달 기협중앙회가 발표한 중소제조업업황전망(SBHI) 수치는 조사 이래 최저치인 88.1을 기록했다. SBHI는 100을 기준으로 그 이상일 때는 경기가 회복될 것임을, 그 이하일 때는 경기가 부진해질 것임을 의미한다. '중소기업 경영 애로요인 조사'에서도 52.5%가 내수부진을 꼽았다. 중소제조업체의 생산설비 평균 가동율도 지난해 12월 기준 70.8%를 기록, 99년 8월(70.6%) 이래 최악의 수치를 나타냈다.
엎친데 덮친 유가급등
올들어 벌써 9.3%나 오른 국제유가도 중소기업들의 주름살을 깊게 하고 있다. 지난해 초와 비교하면 50%이상 오른 셈이다. 경기 시화공단에서 폴리에스터 섬유 가공업체를 경영하는 최진호 사장은 "반년 만에 유가가 60% 올랐던 99년도에는 합성섬유 원자재 가격이 40% 뛰었다"며 "요즘 오르는 유가를 보면 잠이 안온다"고 말한다.
LG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원유값이 10% 상승하면 석유, 화학, 전력 등 산업 원자재 가격은 3∼5%이상 오른다. 특히 원자재 구매량이 비교적 소량이고 다양화되지 못한 중소기업의 경우 5∼7%이상의 원가부담 요인이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통계상 중소기업의 47.2%가 원가상승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 채산성 악화가 우려되고 있다.
외국인 노동력도 모자란다
중기청에 따르면 불법체류를 포함해 이미 26만여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국내에 취업 중이지만 여전히 20만여명의 인력이 부족하다.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도 상승해 지난해 말 평균임금은 107만820원으로 이미 내국인(121만3,000원)의 88.3%에 달했다. 한편 중소기업의 75.3%가 인력 부족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외국인 연수생에 대한 지원확대를 원하는 기업도 많아(28.4%) 이들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최근에는 이런 상황을 악용해 근로조건과 벌이가 더 나은 곳으로 도망가는 외국인도 많다. 27명의 근로자중 11명이 외국인인 대구의 한 나염공장에선 1월 한달 새 10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야반도주를 했다. 이 회사 윤모사장은 "요즘은 외국인 노동자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라며 "설사 구한다 해도 1달 이상 일하는 사람이 드물다"고 말했다.
경기 회복외엔 대책없나
각급 경제연구소와 정부 등 유관기관들은 "100가지 정책적 대안보다 경기회복이 중요하다"는데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국내외 경제지표가 자못 비관적인 점을 감안할 때, 더 이상 '경기회복'이라는 감이 떨어지기만 기다려서는 안된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무엇보다 인력난 문제부터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기청 고위관계자는 "외국인 노동자 제도 개선논의의 초점은 중기 인력난 해결에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권교체기를 맞아 정책당국과 정치권이 서로 눈치보기를 거듭하는 가운데 산업연수생 쿼터의 상향조정이나 불법체류 노동자 양성화 등 인력난을 해결하려는 적극적 대책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게 관련업계의 시각이다.
유가상승에 대비한 중소기업 지원책도 아직 미비하다. 한 중소기업인은 "기름값, 원료값 상승을 잡을 수 없다면 대통령 당선자가 공약한 세제지원과 자금지원이라도 조기 실현해 달라"고 촉구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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