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새해 소망은 봄이다. 캘리포니아 출신인 내게 서울의 추위는 살인적이다. 찬 공기가 부드러워지고 진달래가 꽃을 피울 때까지 기다리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내 고향에서는 이 맘 때면 비 구름이 대지에 낮게 내려 앉아 겨울 추위를 누그러뜨린다. 한국의 겨울 하늘은 너무 높다. 바람 부는 날 올려다 보면 그 푸르름이 끝도 없는 듯하다. 그 광막함 속에 있다 보면 문득 진달래 생각이 난다.잠시 내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수로부인이라고 상상해본다. 남편과 강릉 가는 길에 높은 산 오르막에 핀 진달래를 발견한 수로 부인. 누가 꽃을 꺾어 올 사람이 없냐고 묻지만 사람들은 진달래는 사람의 발이 닿을 수 없는 곳에서만 핀다고 대답한다. 그 때 낯선 노인이 소를 몰고 나타나 산에 오르더니 꽃을 꺾어 수로 부인에게 건넨다. 나의 새해 소망은 그런 견우 노인을 만나는 것이다.
요즘 전설 속의 인물을 찾는 것만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미국 정부의 많은 인사들도 그럴 것이다. 북한 영변 핵 시설에서 불거진 문제는 한미 양국 관계를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나는 그 사태를 보면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영변의 약산 진달래 꽃/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라는 유명한 한국 시를 떠올린다. 현재 미국이 북한에 대해 취하고 있는 침묵(대화단절)은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라는 싯구의 반향으로 들린다.
침묵은 한반도 핵 위기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소월의 '진달래' 속 화자의 절박한 심정을 연상케 하는 절박한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시의 마지막 구절인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가 북한이나 미국의 권력자들의 입에서 나온다고 상상하면 공포감마저 느껴진다. 침묵이 계속되면 많은 사람들의 죽음으로 인해 눈물이 흐를 수도 있다.
만일 영변의 '약산(藥山)'에 약이 있다면 그것은 수로부인 설화 그대로다. 매우 간단하다. 원하는 것을 구하면 된다. 노인이 나타나 불가능한 일을 일어나게 만든 것은 바로 수로 부인이 그것을 구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단순한 희망이 아닌 평화를 보아야 한다. 그리고 북한을 대화에 끌어들임으로써 그것을 구해야 한다. 나 역시 이 추운 겨울에 봄을 가져다 줄 견우노인을 구하고 있다.
웨인 드 프레머리 미국인 서울대 국제지역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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