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만 관심 갖나.'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 분신 이후 각 언론이 회사측의 손해배상 및 가압류 조치에 대한 문제점을 보도, 여론화하고 있으나 '늦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손해배상 소송이나 가압류 조치는 그동안 노동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한 문제점인데도 언론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한국기자협회가 발행하는 기자협회보 1월 29일자에 실린 "사람이 죽어야만…"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위와 같이 시작하고 있다. 왜 언론은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로 언론의 현 출입처 중심 취재 시스템의 문제를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즉, 기자의 상례적인 취재 영역 밖에서 벌어지는 일은 아무리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안이라도 보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선시 진보 정당 관련 기사가 제법 실리다가 대선 이후 자취를 감춘 것도 바로 그런 취재 시스템의 문제와 무관치 않다. 진보 정당들이 제기하는 이슈들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사들이 진보 정당들을 상시적인 기자 출입처로 삼지 않기 때문에 전면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취재 시스템 문제는 우리 국민이 세상 돌아가는 걸 아는 데 있어서 구조적인 은폐와 왜곡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좀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사안이다. 현 시스템은 무엇보다도 사전 예방 기능을 포기한 채 큰 사건이나 사고가 터져야만 작동하는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
원래 그게 뉴스의 속성이 아니냐고 넘겨 버리기엔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과 손실이 너무 크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땅히 보도되어야 할 것이 출입처의 취재망 밖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보도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일단 큰 사건이 터지면 언론사들간 경쟁 심리가 작동해 과잉 및 과열 보도가 난무함으로써 다른 주요 의제들을 국민의 관심권 밖으로 밀어내버리는 것도 문제다.
물론 언론사 입장에서 출입처 이외의 사건들을 뉴스로 다루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제한된 인력의 문제도 있거니와 취재 비용이 높아지기 때문에 언론사들은 출입처에서 제공하는 보도자료의 유혹을 피하기 어렵다. 또 독자들의 뉴스 가치에 대한 인식도 기존 시스템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에 따른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무사안일주의 때문에 신문들이 획일화하고 그 결과 독자들을 멀어지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실용과 쾌락'은 우리 시대의 중요한 문화적 코드이긴 하지만 그게 전부일 수는 없다.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살면서도 사회 전체를 생각하는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으며, 언론이 그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기존 취재 시스템이 오히려 언론을 쇠퇴케 하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는 건 아닌가?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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