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는 100여 점, 고흐는 50여 점의 자화상을 남겼다. 화가들의 자화상은 그들의 다른 어떤 그림보다 강렬한 인상을 준다. 서구 미술사에서 자화상이 나타난 것은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와 일치한다. 자화상은 자아에 대한 의문의 제기이자 그 탐구의 과정이다. 그들이 그린 것은 얼굴이지만 실제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스스로의 내면이다.성곡미술관이 14명의 자화상으로 여는 '아이·유·어스(I·YOU·US)' 전은 신진에서 중진까지 현재 활동 중인 한국 작가들이 자아와 타인과의 관계, 혹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전시다. 29세 판화작가부터 65세 사진작가까지 각 연령층의 작가들은 다양한 재료와 기법으로 스스로의 얼굴과 사회상을 함께 드러낸다.
세대별로 작가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우선 재료다. 서양화가 김차섭(61)씨는 80년대 중반 세계지도 위에 유채로 그린 자화상 3점을 내 놓았다. 세계를 떠돌며 여러 민족의 삶의 양식을 탐구해 온 작가의 이력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서양화가 서용선(52)씨는 개인교수, 이삿짐센터, 하숙집 등의 안내광고가 빼곡한 신문지 위에 자화상을 그렸다. 젊은 작가 송하나(29)씨는 쇼핑백 위에 자신의 얼굴을 그리거나, 유명 화장품 광고의 모델을 패러디한 작품들을 보여준다. 사진작가 황규태(65)씨는 일본 영화 '쏘나티네'의 주인공이 자신의 이마에 권총을 들이댄 장면에서 얼굴만 자신의 사진으로 바꿔치기하거나, 신문에 난 연예인들의 모임 사진에 자신의 모습을 슬쩍 끼워넣어 합성했다. 세계지도와 신문, 쇼핑백, 영화광고의 사용은 자화상이 곧 그들이 보는 사회상의 표현임을 알려준다.
자화상이지만 얼굴의 모습을 지워버린 작품이 공통적으로 포함된 것도 눈에 띈다. 화가 김진정(37)씨의 '마스크' 연작은 어지럽게 뒤엉킨 미세한 선의 자취로 얼굴의 윤곽만을 그린 작품이다. 개인의 특성은 무시되고 사회성도 사라져버린 하나의 유기체, 혹은 네트워크 같은 전체에 부속해 익명의 개인으로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시선이다. 종이조형작가 이영순(53)씨는 잘게 깨진 거울 같은 화면에 얼굴이 일그러져 버린 모습, 구겨진 종이에 탈바가지 같이 윤곽만 남은 사람의 얼굴을 보여준다.
극사실 기법으로 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냉정하게 그린 정통적 자화상이 있는가 하면,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의 모습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은 화가도 있다. 젊은 작가들은 강아지 혹은 오징어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표현하기도 했다. 13일부터 3월 30일까지. (02)737―7650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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